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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21화)
Chapter 9 황금괴물(4)
우우웅!
주술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이스마엘은 그려진 그림의 연장선상에 서서 눈을 감고 알 수 없는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는 해골이 들려 있었다.
악령이 가득 담겨 있는 해골!
그 해골을 들고 주문의 외는 이스마엘의 모습은 음산함, 그 자체였다. 마치 마족이라도 소환하는 흑마법사 같기도 했다.
“후우.”
이욱은 숨을 내쉬었다.
그가 서 있는 위치는 골렘의 바로 앞.
골렘에 사념체가 자리 잡혀서 싸우게 된다면 가장 위험한 위치이면서도 가장 최적의 위치기도 했다. 놈을 빠르게 제압할 수 있으니까!
“요홈, 로리아르……호세니르…….”
주문에 힘이 담겨져 있었다.
그저 무작정 주문을 외는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힘이 담긴 주문이었다. 엄청난 마나가 그 주위를 배회하며 요동쳤다. 마치 무언가 불만에 휩싸인 듯, 마나는 요동치다 못해 폭주할 기세였다.
선.
아주 가느다란 선.
그 선을 넘으면 마나의 폭주가 이뤄진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노련했다. 그 선 위에 마나를 올려놓고, 넘지 않게끔 조절하고 있었다.
즉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
그 힘을 이스마엘은 내고 있었다.
울컥!
“큭!”
이욱은 복부에 무언가 맞기라도 한 듯, 순간 무언가 울컥 치솟았다.
울컥울컥!
단순한 구역질이 아니었다.
마나.
마나를 토해 내고 있었다. 깊은 곳, 챠크라 안에서 쉬고 있던 마나가 어쩔 수 없는 힘에 울컥 치솟고 있었다. 챠크라의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울컥, 울컥울컥!
“커허헉!”
끝내 마나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거침없었다. 챠크라를 벗어나고 치솟는 마나는 모래로 이루어진 이욱의 세포들을 뚫고 식도까지 올랐다.
그리고 입을 통해 바깥으로 배출됐다.
기침을 할 때마다 푸른 마나를 계속 토해 냈다.
그 푸른 마나는 이스마엘의 주위에서 요동치는 마나와 결합을 시작했다.
콰콰콰콰!
폭포수.
마나의 폭포수! 이스마엘의 마나와 결합한 이욱의 마나는 폭포수처럼 흘렀다. 그리고 그 폭포수가 내리꽂히는, 해골!
끼에에에엑!
꾸루루룩! 꾸룩! 취에에엑!
해골에서 수많은 악령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침없는 마나의 공세에 악령들이 고통을 받은 터였다.
그 비명 소리는 수련장을 울렸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졸도시킬 만큼의 강한 기운을 담은 비명들! 만약 듣는 이가 있다면 곧바로 미쳐 버리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끼에엑! 취이이익!
으아아악!
끊임없는 악령들의 비명.
그리고 사람의 비명.
사람의 비명? 갑자기 웬 사람의 비명이란 말인가? 악령들은 모두 괴수들이었다. 결코 사람이 없었다. 그럼 사람의 비명 소리는 어찌 된 노릇이란 말인가?
“으아아아아악!”
이욱의 입이 크게 열렸다. 푸른 마나와 동시에 커다란 비명이 귀를 막게 할 정도로 울렸다. 다름 아닌 이욱의 비명이었다.
이욱은 머리가 아찔했다.
어떻게든 버티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정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고통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비규환.
말 그대로였다. 비명이 서로 부딪치고 부딪친다. 그런 비명들은 벽에 금이 가게 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런 비명 아래, 마나를 토해 내는 역겨움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다.
1년 가까이 정신력을 가다듬은 이욱이 말이다.
“으으아아! 나…… 나는!”
이욱은 비명을 꾹 참으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순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흉포함이 뿜어져 나왔다.
고작 이것에.
고작 이쯤에 정신을 잃을 수는 없다. 이욱은 이빨을 악물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주먹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긴다아아!”
이욱은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해골에서도 기이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비명을 내지르던 악령들이 마나의 힘에 의해 강제로 합쳐지고 있었다.
커다란 악령이, 작은 악령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좀 더 큰 악령을. 더 큰 악령을. 더…… 더 큰 악령을 잡아먹고 커져만 간다. 101마리의 악령은 그렇게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콰직, 콰지직!
하나가 되어 가는 악령은 커져만 갔다.
그러자 커지는 악령을, 그 작은 해골 안에 가둘 수는 없는 노릇! 악령은 더욱 커져가자 해골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깨질 조짐이었다.
그리고, 끝내!
콰득, 쾅!
해골은 그대로 부서지고 말았다. 그 순간.
끼헤헤헤헷!
거대한 악령이 뛰쳐나왔다.
하나의 악령이 된…… 사념체였다.
검은 안개.
그랬다.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안개와 같은 형상이었다.
101마리의 악령이 뭉쳐 만들어진 사념체!
사념체는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달려들었다. 다름 아닌 이욱에게! 이욱이 막을 수는 없었다. 101마리의 악령이 합쳐져 만들어진 사념체의 기운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더욱이 마나를 토해 낸 이욱이 어찌 버티랴!
하지만 그때 이스마엘이 재빨리 손을 뻗었다.
콰콰쾅!
“요홈, 에스달리마아!”
끼엑, 끼이이이익!
거대한 힘이 터졌다. 힘은 사념체를 붙잡았다. 검은 안개와 같은 사념체는 마나의 힘에 붙잡혀 그대로 쭈욱 밀려갔다.
그러고는 샌드 골렘의 머리 위에 박혀들었다.
끼에에에에엑!
콰직…… 콰지직.
벽에 금이 간다. 저 비명 소리에 벽에 금이 가고 흔들리기까지 했다. 이욱도 저 소리에 몸의 내장 기관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몸 안이 완전 진탕이 되어 가고 있었다.
“크윽…….”
사념체가 샌드 골렘의 머리에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은 상당히 그로테스크했다. 그럴수록 이스마엘의 표정이 사납게 구겨졌다.
어느새, 그 늙은 나이에도 건강한 검은색의 머리는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더욱이 수많은 주름들이 얼굴에 가득해졌다. 평소 40대로 보이던 이스마엘이 70대 노인으로 변모했다. 순식간에.
끼에에에엑!
콰지지직!
한 차례 비명이 계속됐다.
이스마엘이 더욱 힘을 낸 순간.
사념체는 샌드 골렘의 몸속에 완전히 갇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팟.
샌드 골렘의 눈이 떠졌다.
그리고.
휘익!
뭐라 할 새도 없는 짧은 순간.
이욱의 가슴에 골렘의 손톱이 닿았다. 그리고 손톱은 거침없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푸우우욱.
* * *
“…….”
이욱은 말을 잃었다. 가슴이 데인 듯,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고통이 머리끝까지 치솟지만, 차마 입을 열 수 없다.
고통에 입만 뻐끔거릴 뿐.
정적.
숨 막히는 정적이 주위를 맴돌았다. 이욱에게는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저 멀리서 손을 뻗으며 달려오는 이스마엘도, 자신의 가슴팍에서 손톱을 뽑아내는 샌드 골렘도.
모든 게 아주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꿈같다. 그것도 지독한 악몽…….
하지만, 그 악몽은 애석하게도 현실이었다.
“커헉, 커허헉!”
이욱은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믿을 수 없었다. 분명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리 허무하게 당하다니!
이대로 죽는단 말인가.
이대로…… 이대로,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순간 이욱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죽는다면 이 얼마나 허무한 상황이란 말인가! 이욱은 억지로 몸을 바로 폈다. 그리고.
꽈악.
이욱은 샌드 골렘의 손을 붙잡았다. 골렘이 자신에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그다음 이욱은 피식 웃었다.
“인마. 넌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그 순간, 이욱의 미소는.
사념체가 섬뜩하게 느낄 정도로 소름 끼쳤다. 이욱은 남은 마나를 모조리 긁어모았다.
그리고, 터뜨렸다.
콰아앙!
귀를 얼얼하게 만드는 폭음!
그 폭음의 결과는 놀라웠다. 샌드 골렘의 팔뚝을 완전히 부숴 버렸으니까. 하지만 그뿐이었다. 놀랍게도, 폭발로 인해 날아간 샌드 골렘의 팔에 다시 모래가 붙어 팔이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이건 이욱이 미리 만들 때 해 놓은 장치도 아니었다.
사념체.
그 사념체가 만들어 내는 현상이었다.
이욱은 당황했지만 망설이지 않고 골렘의 손톱으로 손바닥을 베어 냈다. 피가 주룩 흘러나왔다.
그 손바닥을 활짝 펴고.
이욱은 그대로 손을 뻗었다.
골렘의 가슴에 그려져 있는.
용의 문양!
그 문양에, 이욱의 피가 닿았다.
* * *
이스마엘이 준비했던 주술 하나가 다시금 발휘되었다.
바로, 종속 주술!
피를 통해서 상대를 자신에게 종속을 시키는 주술이었다. 이 주술도 실력 있는, 아니 이스마엘이나 되기에 사용할 수 있게 된 주술이었다.
주인이 될 자와.
수하가 될 상대.
우선 주인이 될 자와 연관될 수 있는 ‘무언가’가 수하에게 있어야만 했다. 그렇기 위해서 이스마엘이 선택한 것은 모래술사의 신기였다.
모래술사의 신기의 모양!
용의 펜던트!
그 용의 펜던트 그대로 골렘의 가슴에 그림을 그렸다. 그냥 그림만 그렸는가? 아니었다. 수많은 주술적인 힘을 담아냈다.
어쨌든 그렇게 이욱과 연결되는 고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고리에, 이욱의 피가 닿는 순간. 피로 인한 혈약이 저절로 발동되는 것이다.
종속의 주술!
그것이 지금 발휘되고 있었다.
쿵! 쿵!
“끼이이이익!”
하지만 골렘, 아니 정확히 말해서 사념체는 종속 주술에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분명 이스마엘이 심혈을 기울어 만들어 낸 장치에도 불구. 사념체는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욱이 빠져나가게끔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엄연히 이 골렘은 자신이 만든 부산물이었다. 여기서 자신의 수하가 되기를 거절하면, 그래도 파괴할 생각이었다.
“날 따르라! 넌 나의 수하다! 내가 너의 주인이란 말이다!”
쿵!
이욱의 외침이 사념체를 흔들었다. 수많은 악령으로 이루어진 사념체. 그 사념체가 저 외침 한마디에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날 따르라 했다. 내 명령을 거부하지 마라!”
“끼, 끼히히힉!”
“마지막이다. 날…… 따르라.”
이욱의 외침은 점점 싸늘해졌다. 마치 차가운 얼음이 주위의 기온을 내리는 것처럼. 주위가 싸늘하게 변해 갔다. 그 싸늘함 속에 사념체는 점점 흔들렸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종속 주술이 절반은 먹혔던 터.
거기서 이욱의 외침 하나, 하나가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
쿵!
사념체는 굴복했다.
황금괴물.
400년 만에 탄생한 샌드 골렘이, 이욱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개를 조아렸다. 마치 그 모습이 황금빛의 오크 카푸르가 복종하는 모습과 같았다.
이욱은, 간신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철퍼덕.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