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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22화)
Chapter 10 뛰는 하자르, 나는 이욱!(1)
출혈이 너무 심했던 탓이었다.
큰 출혈만 아니었으면 이욱은 그렇게 정신을 잃고 복종을 하는 골렘의 곁에 쓰러지지 않았으리라.
무엇보다 이욱을 또 놀라게 한 상황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주술이나 따로 외과적인 치료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이욱이 묻자.
이스마엘은 이렇게 답했다.
“몰라. 그냥 찢어진 부위를 열어 보니 정말 모래로 되어 있더라고. 그래서 모래를 무작정 부어 버렸지.”
“…….”
그 말에 이욱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기에 가능한 소리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떡하겠는가? 벌어진 상처 위로 모래가 들어온다면 그건 또 다른 질병의 발생을 불러오는 결과였다.
어쨌든 하루가 지나자마자 이욱은 다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샌드 골렘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하…….”
비밀 수련장.
곳곳에 금이 가고 부서져서 전과 달랐지만, 그 수련장 한가운데, 굳건히 서 있는 황금괴물, 샌드 골렘의 포스는 대단했다.
“한 걸음, 다가오라.”
이욱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샌드 골렘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굳은 듯 서 있었다. 순간 당황한 이욱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분명 종속 주술에 의해, 골렘은 자신에게 굴복했다. 그러나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있었다. 설마 주술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것인가?
이욱은 문득 붉은 핏빛과 황금빛이 혼합되어 묘한 빛을 내뿜는 골렘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용의 문양.
그 용의 문양에 자신의 핏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문득 이욱은 펜던트를 만졌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한 발짝 앞으로.”
쿠웅.
놀라운 일이었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던 놈이, 펜던트를 만지며 작게 중얼거리자 자신의 뜻대로 움직였다.
“이 펜던트가 저놈과 이어지는 고리라는 것이군.”
그랬다. 종속 주술을 사용할 때도 이 펜던트가 하나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해냈었다. 즉 골렘과 소통하려면 이 펜던트를 만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편했다.
손을 올려서 펜던트를 만져야 한단 말인가.
이내 이욱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마나를 펜던트 주위로 집중시켰다. 그리고 명령을 내렸다.
“왼쪽 무릎을 꿇으라.”
쿵!
묵직한 느낌이 바닥을 타고 전해져 왔다. 됐다. 마나로써 펜던트를 매만지며 명령을 내려도 골렘은 충분히 이행하고 있었다.
“후후후.”
이욱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마치 저번에 모래를 처음으로 다루게 되었을 때처럼. 그 성취감이 말로 이루어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욱은 기지개를 쫙 폈다.
그리고 몇 번 더 골렘을 움직이고는 한쪽으로 팔짱을 끼며 한 손으로는 턱을 쓰다듬었다.
“이름을 지어 줘야 하지 않겠나?”
이런 거대한 놈을 만들어 냈다.
아직 전투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대단한 놈이었다. 카푸르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했으니까. 그런 놈에게 늘 ‘골렘, 골렘’이라 부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욱은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어떤 게 좋으려나.”
한참을 고민하던 이욱.
이욱의 시선이 골렘에게 닿았다.
“모래로 만들어진 골렘 같지가 않아. 마치 황금으로 이루어진, 괴물 같다랄까.”
그것이 솔직한 소감이었다.
단단한 모래는 광택이 번쩍이고 좋았다. 그렇기에 골렘의 몸은 마치 황금빛을 내뿜는 듯한 느낌을 풍겨주고 있었다.
“골든 몬스터(Golden Monster). 좋군.”
멀지 않는 미래.
사막, 아니 전 대륙을 격동시킬.
황금괴물, 골든 몬스터의 탄생이었다.
* * *
골든 몬스터를 만들어 낸 이후, 이욱은 계속해서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독하게 수련에 매진했다. 이제 남은 기간은 2달.
2달이 지나면 생사가 걸린 대결이 시작되리라.
거의 1년을 준비해 온 생존 게임이다.
괴물들 틈에서의 생존 게임이 아닌, 같은 사람들 틈에서의 생존 게임! 그렇기에 다가오는 의미가 좀 더 각별할지도 모른다.
허나 이욱은 아니었다.
적이 괴물이든, 사람이든 간에.
적이라면 죽여야 했다. 그래야만 내가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이젠 실전 수련에 들어가야지?”
문득, 챠크라를 가다듬고 있던 이욱에게 이스마엘이 다가왔다. 이스마엘의 얼굴에는 잔주름이 많아졌고 머리도 완전히 백발로 바뀌었기에 노인, 그 자체였으나.
아직도 풍기는 포스는 과연 대단했다.
아니, 오히려 풍채 좋은. 정말 멋지게 늙은 노인의 모습이었다. 어쨌든 그런 이스마엘이 오늘은 웬일로 전투 복장을 입고 나타났다.
“실전 수련?”
“2개월 후 오는 대결. 거기서 상대해야 하는 자는 주술사. 하지만 네가 상대한 놈들은 기껏 몬스터들. 이젠 실전에 익숙해져야 한다.”
“어떻게?”
“나. 내가 대신 그 상대의 역할을 하지.”
그 말에 이욱의 입가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해 보고 싶었다. 주술사와의 대결!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던 싸움이었다. 2개월 후 올 대결에 대비하여 이스마엘을 말대로 실전처럼 수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오히려 탁월한 선택이리라.
“자, 그럼 시작하지.”
“흠? 잠깐만 준비 시간 정…… 흡!”
이욱이 잠시 멈칫거리는 사이.
그 틈을 이스마엘의 주술이 퍼부어졌다. 갑자기 펼쳐지는 아찔한 주술의 향연에 이욱도 말을 잇지 못하고 재빨리 챠크라를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
이기기 위한 대결.
아니, 살아남기 위한 대결!
그 대결에서 승리하고자 지독한 수련이 시작되었다.
* * *
“후우…….”
이욱은 욱신거리는 어깨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온몸이 멍으로 가득했다. 분명 자신은 강해졌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참패였다.
비록 수련이라지만, 그것은 수련이 아니었다.
정말 실전과 같았다. 이스마엘은 정말로 이욱을 죽이고자 달려들었고, 이욱 역시 살아남고자 달려들었다.
수련을 빙자한…….
이스마엘의 엄청난 공격에 이욱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주술사와의 싸움은 처음이다. 그렇기에 이욱이 초반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며칠 내내 계속되는 실전 수련.
이욱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싸움의 방법을 익힌 것이었다. 주술사를 상대하는 싸움의 방법을! 그러자 이스마엘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매서운 공격을 자주 사용했다.
자칫 이스마엘도 목숨이 아찔할 정도의 공격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으니까.
하여튼 계속되는 실전 수련.
이욱은 성장을 거듭하면서도, 몸이 성할 날이 하루도 없었다.
“오늘은 잠시 쉬어야겠군.”
너무도 피곤했던 탓일까?
이욱은 쉬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지난 1년간, 쉬고 싶다는 생각은 수없이도 했다.
그러나 쉬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무작정 수련에만 온 정신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푹 쉬고 싶었다.
그래서 이욱은 바깥 정원으로 나왔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지만, 정원에는 작은 인공 오아시스가 형성되어 있었다. 야자수의 그늘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늘 아래, 이욱은 접이식 의자에 앉으며 몸을 푸욱 기대었다.
얼마만의 휴식인가!
이게 얼마만의 여유란 말인가!
그토록 흉포했던, 거칠기 짝이 없었던 이욱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웃음.
그러나 그 웃음은, 정원에 들이닥친 방문객들 때문에 산산조각이 나고야 말았다.
스스슥!
아주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일반인, 아니 상당한 주술사라고 하더라도 쉽게 느낄 수 없는 기척! 허나 이욱에게는 그 모래를 타고 느껴지고 있었다.
모래 위에서만큼은.
자신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나…… 둘…… 넷이군.’
총 4명.
4명의 은밀한 그림자가 정원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이욱을 포위해 오고 있었다. 순간 이욱의 입가에 사라졌던 미소가 다시 그려졌다.
재밌다.
‘암살자라.’
살심을 죽이고 있었지만, 모래를 타고 그 옅은 살심마저 느껴져 온다. 이러면 따질 것도 없었다. 열에 아홉은 자신을 죽이려 온 암살자였다.
죽이지는 않더라도 최소 자신에겐 적대적인 사람들이라는 사실. 난생처음이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은밀히 접근하는 상황은.
‘20m…… 15m…… 음, 10m?’
이욱은 눈을 감으며 여유를 즐기는 척하며, 모래를 통해 암살자들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암살자들은 점점 가까워졌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뱀들처럼!
하지만 이욱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기다리면 저들이 오리라.
이욱은 태연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아니,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지금 이욱은 주술 하나 쓰지 않고 저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마나를 펜던트 주위로 몰았다.
‘나와라.’
우우웅!
순간 가만히 있었던 모래가 모여들었다.
모래의 응집화.
스스로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모래는 서로 뭉치고 무언가 형태를 만들어 갔다. 순식간이었다. 마치 탑을 쌓아 올리듯, 만들어진 황금빛의 형체!
뜨거운 태양 아래.
눈부신 황금빛을 뿌리는.
골든 몬스터였다.
“놈들을 죽여!”
휘웅!
이욱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골든 몬스터는 거대한 몸체를 날렸다. 그러자 순간 감쪽같이 가려져 있던 암살자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이욱을 향해 비수를 던졌다.
슈, 슉슉!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는 비수들!
하지만 이욱은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매서운 눈빛으로 골든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과연 골든 몬스터가 자신의 세세한 명령 없이 움직일 것인가!
차창, 쨍!
날아오던 비수는 손톱에 의해 모조리 허공에서 잘라졌다. 그것을 본 이욱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세세한 명령까지는 안 내려도 되는군.’
만약 그랬다면 귀찮았다.
어디를 방어하라.
어디를 공격하라. 어느 부분을 막아서라. 그리고 쳐라. 이런 명령을 일일이 내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름 사념체가 생각을 하고 움직일 수 있는 듯했다.
“제길!”
“알고 있던 것인가?”
암살자들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한 번 단도를 꺼내 들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촤악!
순간 하늘 높이 뛰어오르며 달려들던 두 놈이 완전히 두 동강 났다. 마치 목석이 잘리듯, 골든 몬스터의 손톱에 일도양단되고야 말았다.
남은 두 암살자는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몸을 멈추었다.
“화, 황금괴물?”
“오, 오크다! 황금오크!”
놈들은 골든 몬스터를 보고 별안간 소리를 내질렀다. 그만큼 골든 몬스터의 위압감은 단연 최고였다. 단지 그 존재만으로도 주위를 억누르니까.
쿵! 쿠웅, 쿵!
골든 몬스터는 남은 암살자들에게 다가갔다.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김에도, 그들은 도망갈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
공포!
그것은 공포였다.
난생처음 보는 황금괴물의 거대한 위압감에 도망갈 엄두조차 못 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이욱의 눈이 흥미롭게 변했다. 마치 고양이 앞의 생쥐 격이 아닌가. 이욱은 살짝 한숨을 내쉬고 질문을 던졌다.
“누가…… 보냈나?”
이욱이 질문을 던지자 골든 몬스터는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암살자들은 오히려 표정을 구긴 채, 이욱을 노려보았다.
“…….”
“입을 다무시겠다?”
이욱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느 순간, 골든 몬스터의 옆에 도달했다.
“말하는 게 좋을까, 밟히는 게 좋을까.”
“…….”
암살자는 대답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흉흉한 눈빛으로 단도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이욱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죽어도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알아내면 됐다.
“발자국이 북쪽으로부터 달해 왔군.”
이욱은 모래에서 느껴지는 저들이 온 방향을 슬쩍 찔러 보았다.
“……!”
효과가 있었다. 미동조차 안 하고 흉흉한 눈빛이던 암살자의 눈썹이 아주 살짝 꿈틀거렸다. 아무, 미세한. 이욱은 슬쩍 미소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흠. 뭐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다만, 네 명 모두 여기서 북쪽이라면……. 원로회의가 열리는 소리안 궁이 아닌가?”
“……!”
순간, 암살자 한 명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하지만 재빠른 포커페이스 속에 감춰졌다. 그러나 이욱이 그것을 이미 포착했다. 단단히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이 말하자마자 바로 당황해?
그럼 뻔했다.
자신이 추측한 것이 정곡을 찔렀다는 소리다.
북쪽에서 왔다고 무조건 원로회의가 열리는 소리안 궁이겠는가?
아니다. 그냥 대충 찍어 본 것이다. 북쪽에서부터 온 암살자들. 그 발자국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모르나, 일단 북쪽이다.
그리고 자신과 적대적인 인물이 누구겠는가?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2개월 후 올 대결을 제안한 하자르만이 유일한 적대 인물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그랬다. 그러면 북쪽, 원로장이 지내는 소리안 궁이라는 결과가 쉽게 나왔다. 거기서 순간 표정이 변한 암살자.
‘하자르라…….’
모래부족에 지내면서 한 번도 원로장이라는 하자르를 본 적이 없었다.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 아닌가?
모래부족의 주술사를 통한 대결이라는 시험.
거기서 승리하면 모래술사가 되지만 패배하면 죽는다.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생존 게임이다. 그런 게임을 제안한 사람이 하자르다.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이젠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
‘우습군.’
이욱은 냉소를 지었다.
자신만만하게 제안을 해 놓고 이제 와서 비겁하게 암술을 써서 죽이려고 한다? 우습다 못해 유치하게까지 느껴졌다.
순간, 이욱의 마음속 꿈틀거리던 살심이 증폭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암살자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그저 명령을 받드는 하수인일 테다.
하지만.
죽어야만 했다. 왜? 나를 죽이려고 했으니까! 만약 저들을 죽이지 않으면 저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들리라.
그러면, 죽여야 했다.
이욱은 슬쩍 골든 몬스터의 허리를 툭툭 쳤다.
“알아서 해치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