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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23화)
Chapter 10 뛰는 하자르, 나는 이욱!(2)


거대한 소리안 궁.
모래부족의 모든 권력이 모이는 소리안 궁의 탁자에 한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모래부족 원로장 하자르였다.
하자르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된 채로 눈앞에 있는 무언가를 노려보았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둥그런 물체들!
그것들은…….
머리였다. 사람의 머리!
방금 전, 선물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하자르는 검은 박스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열어 보니 이 재수 없는 사람 머리만이 덩그러니 있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이 머리들은.
“이욱 그놈…….”
이욱이 얼마나 성장했나, 푹 찔러 보기 위해서 파견했던 암살자들이었다. 그런데 암살자들은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이렇게 머리만 돌아왔다.
경고.
마치 경고를 하는 느낌이었다.
‘건드리면, 너도 이렇게 된다.’
정도의 간략한 메시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하자르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고작!
고작 이방인 주제에 자신을 모멸하려 한단 말인가?
“하……하하! 많이 성장했구나!”
많이 성장했다.
이 암살자들은 어디 굴러다니는 삼류들이 아니었다. 일류 암살자들이었다. 그런데 일류 암살자 4명이 모두 힘도 못 쓰고 죽은 듯했다.
아니, 무엇보다 놀라운 건.
죽어 가는 이들의 얼굴에 공포심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웃기지 않는가? 암살자들에게 공포를 주면서까지 죽인다면.
그 실력이 도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이스마엘인가?”
설마 이스마엘이 도와줬나 싶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욱의 실력의 성장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으니까.
“이거…… 2개월 후가 기대되는군.”
하자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2개월 후가 기대된다. 과연 이 암살자들을 죽인 실력이 이욱의 실력일지, 아니면 다른 조력자 이스마엘의 힘일지.
그때가 되면 밝혀질 게 아닌가.
원로장 하자르.
그는 건드려서는 안 될, 야수를 깨우고 말았다.

* * *

한 달여가 남은 시점이었다.
이욱의 거처에 누군가 찾아왔다. 저번 암살자들의 접촉 이후, 처음으로 거처를 찾은 외부인.
그 외부인은 전형적인 흑인이었다.
중동 이슬람계와 유사한 사람들만 보아 왔던 이욱으로서는 마치 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흑인은 처음 보았던 터였다.
하지만 만만히 볼 수 없었다.
기선제압일까?
흑인은 엄청난 마나를 뿜어내며 자신을 찾아왔다. 이욱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 흑인이 자신이 상대해야 할 주술사라고!
그는 자신을 카리미 파샤키라 소개했다.
카리미의 포스는 대단했다.
웃통을 벗은 카리미는 온몸이 정말 검은, 그 자체다. 꿈틀거리는 근육과 그 근육들에 자리 잡은 수많은 문신과 피어싱들은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모습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
“말을 못하시는 건가?”
카리미는 상당히 껄렁한 자세였다. 이욱이 인상을 찌푸리며 답하지 않자, 조소를 띠며 조롱까지 했다.
“무슨 일이지?”
“글쎄. 한 달 후에 싸움터에서 만나기 전에 미리 만나 보고 싶어서. 형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거든.”
카리미는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카리미의 신장은 대단했다. 180cm의 적지 않은 키의 이욱도 고개를 들어 올려야 할 만큼.
약 2m가 살짝 넘어가는 정도의 신장.
카리미는 이욱을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보는 카리미의 눈빛에는 광오한 ‘오만’이 담겨 있었다. 그 오만을 느낀 이욱은, 피식 웃음 지었다.
“훗.”
“……?”
비웃음.
비웃음이 가득 담긴 웃음이었다. 그 웃음을 본 카리미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찌푸려졌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이방인 주제에 자신을 능멸하려는 것인가?
이욱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오만은…… 너 같은 자식이 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뭐라?”
“아직 되지도 않은 실력으로 오만을 부리는 것인가?”
“이, 이 자식이!”
카리미는 순간 분노했다.
눈앞의 이방인이, 그저 가소로운 이방인이 자신을 능멸하려 하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었다. 카리미는 그 커다란 손을 뻗었다.
슈욱!
웬만한 사람 얼굴만 한 주먹. 그것은 맹렬한 기세로 이욱을 향해 날아왔다. 프로의 주먹은 0.2초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욱의 반응은 0.2초보다 빨랐다.
수우욱!
잠잠하게 가라앉았던 모래가 순식간에 이욱의 전면에 형체를 만들어 갔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방패였다. 황금광채를 뿌리는 방패!
꽝!
순식간에 생겨진 방패에 카리미의 주먹은 막히고 말았다.
“이 자식이?!”
“승부는 고작 한 달 남았다.”
“…….”
이욱의 무미건조한 말투에, 마나를 끌어올리던 카리미가 멈칫했다.
한 달.
어차피 한 달 후에 서로 생존 게임에서 만나리라.
그런데 여기서 미리 힘을 빼 놓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소리였다. 카리미는 마나를 다시 가라앉히며 기가 막힌다는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고작 이방인 주제에 너무나 광오하다.
마치 한 달 후에는 자신을 이길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한 달 후에 네가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
“우습군. 지금 안 된다고 한 달 후를 노리는 건가? 한 달이면 나를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보는가? 그럼 잘못 생각한 거다. 넌 한 달이 지나도 날 뛰어넘지 못해. 흐흐흐. 그래. 한 달 후에 보지. 그때 울고 불며 살려 달라고 하더라도 용서치 않겠다.”
카리미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멀어져 갔다. 이욱을 바라보는 카리미의 시선은 여전히 오만했다. 멀어져 가는 카리미. 그 뒷모습을 보며, 이욱이 살짝 미소 지었다.
냉소.
이욱의 미소는 싸늘했다.
“지금이라도 넌 내 손에 죽을 수 있다. 다만, 한 달이라는 시간을 더 주는 것으로 신에게 감사하도록.”

* * *

하자르는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크으윽!”
어두운 방 안.
하자르는 고통에 가득 찬 신음성을 뱉어 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니 머릿속이 계속 뒤죽박죽이었다.
“망할!”
악몽.
또다시 악몽을 꾸었다. 하자르는 당혹해할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이욱이 보낸 암살자들의 머리들. 설마 그 머리들에 주술을 걸었을 줄은 누가 알았던가!
이욱이 암살자들의 머리에 걸어놓은 주술은.
‘저주’의 한 계열이었다.
이스마엘에게 배운 주술.
바로 죽은 이의 원혼으로 하여금 악몽을 꾸게 하는 것이었다. 한 번 당하게 되면 최소한 한 달 가까이는 고생해야 했다.
원혼의 비명과 절규를 늘 들어야만 했으니까.
모든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정신력은 점점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당했군! 제대로 당했어!”
하자르는 허탈한 목소리로 탄식했다.
정말 제대로 당했다. 너무나 만만히 봤던 것일까? 암살자들을 죽이고 머리만 보낸 것에 시선이 가 있어 저주 주술이 걸려 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하자르는 술사로서 실력이 뛰어나지 못했다.
하자르가 뛰어난 부분은 오로지 머리 쓰는 곳!
물론 술사로서의 능력도 웬만한 주술사들보다야 뛰어났지만, 그것이 다른 원로들처럼 ‘월등하다’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터였다.
“만만치 않아.”
처음, 경계를 했긴 했다.
이스마엘이 데리고 온 이욱에게서 흉포함을 느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1년 동안 이렇게 성장할 줄은 몰랐다. 이 무슨…….
“이스마엘!”
이 모든 원인은 이스마엘이었다.
이스마엘은 사막에서 제일가는 주술사였다. 그 누구보다 강했고,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런 이가 스승으로서 주술을 가르쳤다.
1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으리라.
이룬 엄청난 성장이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하자르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스마엘은 ‘스승’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저 조력자였다.
물론 요즘에야 실전 수련을 통해서 스승으로서의 모습으로 변모하긴 했지만, 지금의 이욱은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만약 하자르가 이 사실을 안다면.
경악하다 못해 놀라 뒤로 쓰러지리라.
“후. 이런 성장 속도라면, 어쩌면 카리미에 버금갈 수도.”
하자르는 어디선가 가져온 술잔을 기울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문득 든 불안함이었다. 이 정도의 성장 속도라면 자신만만했던 카리미와의 대결도 살짝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신이 카리미를 못 믿지는 않았다.
카리미는 젊은 주술사 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천재였다.
그런 천재가 이욱에게 지리라 생각하지 않지만…….
“불안하다.”
불안했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불안은 어떡하란 말인가?
뭔가 조치를 취해야만 불안이 사라질 듯했다.
그렇지만 저번과 같이 암살자를 보낸다?
그러면 경고가 마음에 걸렸다.
더 건들면 자신도 이리 만들겠다는.
그 경고의 메시지.
하자르가 이욱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단지 저주의 주술로 정신력이 붕괴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정신력이 조금씩 무너지자 상황 판단력이 떨어진 결과였다.
불안함에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던 하자르.
“……그냥 간단한 방법을 쓰면 되지 않겠나?”
어둠 속에서.
하자르의 눈동자가 번뜩이고 있었다.


Chapter 11 폭풍의 시작(1)


“후우…….”
이욱은 의자 위에 앉아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시간은 무척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스마엘와의 실전 수련으로 남은 시간을 보낸 이욱.
벌써 다가오고야 말았다.
대결, 아니 생존 게임의 시작은 내일이었다.
하루를 남기고, 이욱은 휴식을 취했다. 전날 긴장을 풀고 취하는 적당한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욱은 잘 알고 있었다.
이욱은 휴식을 취하며 몸을 점검했다.
내일 이기기 위해서는 신체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어 놓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수련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천천히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어떤 식으로 마나를 제어하면 더 효과적인지, 모래 입자를 어떻게 움직이면 더 강력할지를…….
“흠, 흐흠.”
이욱은 목이 말라 와 손을 뻗었다.
탁자 위에 있던 컵을 잡았다. 이욱은 갈증을 해소하는 요량으로 물을 마셨다.
그런데…….
꿀꺽꿀꺽.
“……음?”
물을 마시던 이욱은 순간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급히 컵에서 입을 뗐다. 혀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통증.
이것은…….
“독이군.”
이욱의 표정이 사납게 구겨졌다.
독이었다. 누가 자신의 물에 독을 풀어놓는단 말인가? 이욱은 마신 물을 뱉어 내려 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저 마셨다.
이미 모래부족에 오기 전에 독인의 경지에 다다른 이욱이었다. 고작 이 정도의 독으로 당하겠는가.
그렇지만 이욱이 음독한 독은 일반 독이 아니었다. 전갈이나 독충이 가지고 있는 독은 비교조차 안 되는!
킬링 더스트(Killing Dust)라는 극독 중의 극독이었다. 독을 가지고 있는 샌드웜조차도 한 방에 즉사시킨다는 엄청나 위력의 독!
아무리 이욱이라도 버틸 수 없는 독임에는 자명했다. 그러나 이욱은 아무렇지 않았다.
이미 몸이 안 그래도 독인의 경지였다.
거기에 더하여…….
모래로 이루어진 신체!
모래에 어찌 독이 통하겠는가? 이욱은 약간 쓴맛과 조금의 통증을 느낄 뿐, 이내 괜찮아졌다.
그렇지만 그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도대체 누가.
누가 자신에게 독을 쓴단 말인가?
생각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욱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하자르군.”
이욱은 소리안 궁에 앉아 있을 하자르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하자르, 그밖에 없다.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할 인물은.
“분명 경고를 했건만…….”
이욱은 고개를 저었다.
분명 경고를 했다. 암살자들을 죽여, 머리만을 잘라 보냈다. 그냥 보냈느냐? 아니었다. 한 번 당하면 상당히 고생할 만한 주술까지 걸었었다. 그 정도만 해도 경고로서는 충분하리라.
허나, 경고를 무시하고 다시 자신을 죽이려 했다?
이번에는 간편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인 독까지 썼다.
그러나 틀렸다.
이욱에겐 독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경고를 무시했으니…….”
이욱은 눈을 가늘게 떴다. 순간, 그의 눈빛이 광폭함으로 바뀌었다. 마치, 하나의 야수처럼! 먹이를 사냥하려는 야수의 눈빛!
그 눈빛은, 하자르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