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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24화)
Chapter 11 폭풍의 시작(2)


대결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소리안 궁에 위치한 대연무장이었다. 수많은 원로들과 청년당의 사람들로 관객석들은 까마득히 채워져 있었다.
특히 수많은 원로들이 밀집되어 있는 위치.
원로장 하자르가 있었다.
“승리는 당연 카리미가 되겠죠?”
“허허. 모르는 일이지요. 이스마엘 님이 그토록 주장하는 이방인이 얼마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도 카리미는 젊은 주술사들 중에서는 단연 최고가 아닙니까? 이미 그 실력은 원로들에 버금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하자르는 씨익 미소 지었다.
말은 아직 모르는 싸움이라고 말했다만, 그는 분명 카리미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욱이 약해서다? 아니었다. 최소한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이욱은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카리미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죽었을 테니까.’
죽었다.
곧 그 말은 이 대결장에 나오지 못한다는 소리와 일맥상통했다.
킬링 더스트!
사막의 극독 중의 극독!
그 독에 당했으면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아니, 살아남더라고 해도 최소한 불구는 되었으리라. 킬링 더스트를 사용한 이후, 하자르를 괴롭히던 불안함은 감쪽같이 모두 사라졌다.
이젠 카리미가 모래술사로서 그 영광을 잇기만 하면 충분했다.
‘흐흐, 이스마엘……. 당신의 시대는 갔다 말이오.’
하자르는 슬쩍 고개를 들어 이스마엘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완전히 늙어 버린 이스마엘. 하자르는 그것을 이욱 때문에 저리 된 것이리라 생각했다.
이욱이 죽는 꼴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으리라.
극독에 당한 걸 치료하려고 저리 되었을 것이다.
비록 이욱이 이스마엘에 의해 살아남았더라 하더라도 두렵지는 않았다. 아무리 이스마엘의 치료 끝에 살아남았더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반불구는 되었을 테니까.
둥―! 둥―!
그때, 커다란 북소리가 울렸다.
박수 소리가 요란하게 펴졌다. 수많은 인파의 환영을 받으며 등장한 사내. 뜨거운 태양 아래 모습을 드러낸 카리미!
카리미는 살짝 웃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나로 주위의 모래를 움직이며 간단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카리미! 카리미! 카리미!”
“차기 모래술사! 카리미!”
단지 작은 퍼포먼스에도 관중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하자르는 슬쩍 상대 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훗.’
입가에 걸리는 비릿한 웃음.
이제 이욱이 나와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이욱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자 관중석이 웅성거렸다.
“왜 등장하지 않는 거지?”
“시간 다 됐는데?”
“하자르 님. 그 이욱이라는 이방인이 어째서 안 나오는 겁니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하자르는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승리였다.
이젠 모래부족은 하늘 높이 날아오를 준비만 하면 됐다. 차기 모래술사의 탄생으로 모래부족은 다시 날아오르리라.
그리고 카리미를 키워 낸 자신 또한 날게 되리라.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둥! 둥! 둥!
“우와아아아!”
그때, 커다란 북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환호성에 깜짝 놀란 하자르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카리미의 반대편.
한 인영이 당당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하자르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하자르 님,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 있으십니까?”
하자르의 외침에 옆에 있던 원로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자르는 답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답할 여유조차 없었다.
“어찌.”
어찌 살아올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저리도 당당하게 걸어 나온단 말인가? 설마 독이 실패한 것이란 말인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샌드웜도 즉사시키는 극독, 킬링 더스트다.
실패할 리가 없었다.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불구는 되어야 하리라! 하지만 이욱의 표정은 평온함, 그 자체였다.
그 순간.
“…….”
이욱의 시선과 하자르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이욱의 눈을 똑바로 보는 순간, 하자르는 숨이 멎는 듯했다.
거대한 살기!
저 살기는 상대해야 할 카리미가 아니라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훗.”
순간, 이욱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비웃음.
비웃음 가득한 조소였다.
그 조소를 보자, 하자르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카리미가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 * *

“훗.”
이욱은 하자르를 조소했다.
마치 다 이긴 듯, 평온한 모습으로 앉아 있던 그가 깜짝 놀라는 모습은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하자르…….’
이욱은 하자르를 향해 살기를 뿜어냈다.
지금 생존 게임의 상대는 카리미였다. 허나, 이미 이욱은 이 생존 게임에서 승리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적을 몰랐을 때는.
일말의 불안함이 있긴 했다.
하지만 저번에 카리미를 대면했을 땐, 이미 싸움은 이긴 싸움이라고 단정을 내릴 수 있었다.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놈!
그렇다고 자신보다 강한가?
아니다. 이욱은 자신이 훨씬 강하리라 생각되었다. 스스로 만들어 낸 강력한 모래 주술들! 그리고 사막 제일 전사의 형상을 하고 있는 골든 몬스터!
그 무엇이 두렵겠는가!
또한 이욱에게는 또 다른 카드가 있었다.
불과 한 달 전에 만들어 냈던 카드.
그 카드만 꺼내도 카리미는 손쉽게 끝장낼 수 있었다.
‘다음은 하자르다.’
카리미 다음엔 하자르였다.
이욱은 하자르를 용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이었다. 더욱이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
옛날 같았으면 몰랐다.
힘이 없었다면 이런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리라.
그러나.
지금 이욱에겐 힘이 있었다.
역동적인 힘이!
이욱이 굴속에서 결심했었다.
나를 공격해 오는, 위협해 오는 놈들을, 모조리 죽이리라고. 부수리라고. 찢으리라고!
카리미와 하자르.
저 둘도 그렇게 되리라.
이욱, 자신이 그렇게 만드리라.
죽이리라.
부수리라.
그리고 찢으리라.
자신을 건드린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 주리라!


Chapter 12 전설의 재림(1)


싸움이 시작되었다.
굉음의 시작.
선공은 카리미였다. 그의 손에 모래가 가득 끌어 올려졌다. 모였다.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가 한 개의 끈처럼 카리미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모래는 응집되며, 마치 커다란 구체를 연상시킬 정도 그 완성 속도는 빨랐다.
피식.
명백한 비웃음. 이욱의 입에 비웃임이 지어졌다.
자신의 결속하에 있던 모래를 빼앗기는 느낌.
마치 흡혈귀에게 흡혈당하는 느낌이 이럴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욱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이어진 챠크라의 개방.
콰아아아아아!
전신을 휘감는 푸른 빛줄기들.
그 순간 달려오는 카리미!
그때 이욱의 전신을 휘감던 푸른 마나가 뿜어졌다.
카리미의 양손에 들려 있던 커다란 구체가 흔들렸다. 그걸 응집하고 있던 모래가 흔들렸다.
마치 풍선에 구멍을 낸 모양새처럼 모래가 후두둑 떨어져 왔다.
달려오던 카리미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역했다.
아무리 마나로 결박해도 모래는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어째서 술사의 뜻을 거스른단 말인가?
이욱의 입에 맺힌 미소가 짙어졌다.
모래에 대한 결속력
모래에 대한 지배력!
“누가 더 높을까?”
나른한 목소리.
그 대답은 분명했다.
이욱. 이욱이었다. 신체가 모래로 이루어진 그만큼 모래와 친근한 인물은 없었다.
이욱은 모래였으며, 모래가 곧 이욱이었다.
그런 지배력을 가진 이욱이 카리미의 주술을 무효화시키려 했다. 하지만 카리미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 또한 20여 년 동안 주술을 수련해 온 주술사.
그동안 축적한 마나의 양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
모래에 대한 지배력이 떨어진다면, 마나로 극복하면 되었다. 이욱이 아무리 챠크라를 이용해 상당한 마나를 축적했다고 해도 카리미에겐 밀릴 수밖에 없는 노릇.
치지지지직.
바싹 말라 버렸을 만큼 건조한 그곳에서 수증기가 피어 올라왔다.
문신들이 뜨겁게 타올랐다.
뿌연 마나가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왔다!
순간 압도적인 마나에 이욱은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예상보다 강한 반발력.
그 반발력에 이욱은 한쪽 가슴이 욱신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카리미의 양손에 있는 모래들은 이제 구체가 아니었다.
마치 폭포수와 같은 모래를 만들어 내는 카리미.
카리미는 그 무시무시한 모래를 지배한 채 달려왔다.
그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마나의 파동은 커졌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압축해 버려 부숴 버릴 것 같은 마나의 힘!
밀려오는 압박감!
이욱은 입술을 깨물었다. 괜히 시간 끌 필요가 없었다. 단시간에 끝낸다.
우우우웅!
숨겨졌던 힘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번째 챠크라!
제2챠크라가 열리고 있었다.
이욱이 제2챠크라를 열게 된 지는 고작 한 달. 바로 숨겨졌던 카드가 이것이었다. 두 번째 챠크라! 제2챠크라는 이욱이 처음 열었던 챠크라보다 더욱 거대했고 깊었다.
이것을 여는 순간.
제2챠크라는 주위를 뒤흔들 정도로 수많은 마나를 끌어들었다. 이욱이 저번에 첫 번째 챠크라로 끌어들인 마나의 양의 수배에 이르는!
챠크라 두 개 모두 열렸다.
엄청난 마나들의 폭발!
“크윽!”
몸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 마나는 뜨거웠고, 또 날카로웠으며 매서웠다. 이욱은 그 마나들을 제어하며 달려오는 카리미를 노려보았다.
챠크라의 진동이 더욱 거세졌다. 바닥에 모여 있던 모래들이 하나둘씩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욱이 만들어 낸 첫 번째 주술. 샌드 레인.
황금빛의, 그것도 날카롭기 그지없는 예기마저 뿜어내는 모래의 화살이었다.
그것들은 하늘 높이 부유했다.
하지만 카리미는 빨랐다. 주술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로 어느 순간 이욱의 지척에 도달했다.
그리고 폭포수 같은 모래를 뻗었다.
하지만.
서로의 마나가 비슷해진 이 시점.
모래의 지배력은, 그 누구도 이욱을 따라올 수는 없었다.
“샌드 바인드!”
카리미의 손의 폭포수 같던 모래가 일순간 카리미의 전신을 휘감았다. 마치 그물이 덮어지듯이! 모래에 대한 지배력을 빼앗기고 만 것이었다.
“이, 이런!”
“훗…….”
비웃음.
이욱은 그렇게 카리미를 조소했다. 하늘에 떠올라진 수많은 화살, 그리고 완전히 묶여 버린 카리미. 짧은 시간.
그 짧은 시간 카리미의 머릿속엔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이걸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방법은 없었다.
이욱은 손을 높이 올렸다.
그리고, 팔을 휘감는 마나를 순간적으로 뿜어내면서 아래로 팔을 떨어뜨렸다.
콰콰콰콰!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 금빛 화살들!
금빛 화살이 카리미의 지척에 이른 순간, 모래 입자가 무한정 팽창했다. 커다랗게, 무한정 팽창하는 모래들! 그것들은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폭발했다.
콰콰콰콰쾅!
폭발!
연이은 폭발!
수많은 모래 입자들이 폭발했다. 이욱은 모든 마나를 쥐어짜 내어 모래 입자들을 폭발시켰다.
콰콰쾅!
폭발은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이내 잠잠해졌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이긴 건가?!”
모래가 자욱하여 경기가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았다. 관중들은 웅성거렸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연쇄적인 폭발! 폭발은 대연무장을 뒤흔들 정도로 대단했다. 아니 이러다가 무너지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된 거지?”
하자르는 눈을 부릅떴다.
과연 누가 이겼는가!
카리미이리라. 아니, 카리미여야만 했다. 무조건 카리미가 이겨야만 했다.
이내 자욱했던 모래가 가라앉았다.
꿀꺽.
숨 막히는 정적! 그 정적 속에 침 삼키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윽고, 관중들의 시야에 들어온 현장은 처참했다. 엄청난 폭발의 흔적으로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한 명과.
굳건히 버티고 서 있는 한 명.
싸움은 결정지어졌다.
승리는…….
“이, 이럴 수가!”
털썩.
승자는 이욱이었다.
카리미는 쓰러져 있었다. 그런 카리미를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는 이욱.
“…….”
관중들이 모두 침묵했다.
열이면 여덟, 아홉은 모두 카리미의 승리를 점쳤었다. 어렸을 때부터 주술에는 그 두각을 드러내던 이였으니까.
하지만, 승자는 명백히 이욱이었다.
숨 막히는 정적은 끝나지 않았다.
“후우…….”
정적 속에 이욱의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우와아아아아아!”
순간 침묵이 깨지고 환호 소리가 터졌다. 세상이 떠내려갈 듯한 환호성! 그 환호성에 이욱은 미간을 찌푸렸다.
승리했다는 기쁨도 없었다.
환호성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기쁨도 없었다.
아직, 일을 다 끝내지 않았다.
휙!
이욱은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시야에 하자르가 잡혔다.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으며 이 상황을 부정하고 있는 하자르.
이욱은 악랄했다.
그런 하자르를 보며.
씨익.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쿵!
하자르는 가슴에 커다란 돌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