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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아파? 너무 급하게 한 거야?”

거듭 고개를 저었지만, 더닝튼 후작의 우아한 미간 사이의 실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엉덩이를 쥔 손에 힘이 더 들어가는 것을 보면 들어 올려 몸을 빼내려는 의도였다.

그만두는 것은 서두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 그래서 앙큼하게도 얼른 몸을 움츠리며 아픈 양을 했더니, 예상대로 닉이 대번에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진은 작게 중얼거렸다. 가증스러울 만큼 연약한 척 말이다.

“그러니까 더 아파.”

아픈 게 엉덩이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말은 영악하게 덧붙이지 않았다. 닉이 바라지 않는 말일 테니까.

“미안.”

그 말에 괜찮다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불편한 척 뒤척이는 시늉을 하며 모른 척 엉덩이에 힘을 주어 내리눌렀다. 탐욕스럽게 그를 좀 더 품은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에 뺨을 비볐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목소리가 다시 물어 왔다.

“정말 괜찮은 거야?”

사려 깊기도 하지. 그는 마음이나 감정의 교류는 원하지 않아도 그 밖의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신경 써 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자신의 처지에서는 그게 감지덕지인 것도 알고 있었고.

“응, 정말, 정말.”

엉덩이를 받친 손이 그녀를 더욱 끌어당겨 서로의 배와 가슴이 맞닿았다. 얇은 잠옷과 그의 드레스 셔츠가 사이에 있었지만, 체온은 전해졌다. 좋았다. 어쩐지 눈물이 날 만큼.

엉덩이를 슬금슬금 더 아래로 내리자, 맞닿은 그의 몸에 경련이 스쳐 갔다. 그가 인내의 한계에 거의 다다랐다는 뜻이었다. 그의 귓가를 더듬던 진의 입가에 미소가 비어졌다.

좋았다. 그를 품는 순간만이 정말로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성을 온통 밝히고 있는 샹들리에처럼 온몸의 모든 불이 환히 켜져서는 그를 향하고 환영하는 것이다.

그의 손에 의해 단번에 내리눌러진 엉덩이가 테니스와 펜싱 등으로 다져진 탄탄한 허벅지에 가 닿자, 그의 옆구리에 닿아 있던 가느다란 다리가 바르작거리다 못해 달달 떨렸다. 긴 손가락이 진의 엉덩이에서 떠나, 허벅지며 다리를 온통 쓰다듬고 매만지며 돌아다녔다.

느릿한 처음. 견디다 못한 급한 움직임. 그에 이어지는 위로까지. 말로는 결코 들어 본 적 없는 사랑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게 아니라도 자신을 보는 그의 시선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제 입을 덮치며 목구멍 깊숙이 혀를 집어넣다가도 순식간에 힘을 빼며 상냥하게 입 안을 훑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대로 계속해도 괜찮다고 아무리 말해도 고개를 저으며 웃는 것도.

제 몸 안을 휘젓고 다니는 절제란 없는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참지 못하고 몇 번을 거세게 쳐올리다가도, 그녀가 미간을 곧추세우면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키스로 달래 주곤 했다. 그것이 견딜 수 없이 좋아서 멀어지는 닉의 아랫입술을 물고 놓아주지 않으면, 그는 다시 흥분해서 몸을 움직이고. 통증과 흥분으로 그녀의 입이 커다랗게 벌어지며 숨을 들이마시려 애쓰면 잠시 턱이며 귓가로 물러나고.

언젠가 그의 차에서 그랬던 것처럼 넓은 오랑주리의 커다란 유리창들이 모두 그들이 내뿜는 입김으로 뿌옇게 변할 때까지 있고 싶었지만, 천국의 달콤함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니콜라스?”

순식간에 뚝 멈춘 닉의 움직임에 진의 할딱이는 숨결도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어 잠긴 문고리를 흔드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닉의 동생 빅토리아였다.

“오빠, 거기 안에 있어?”

닉과 시선을 맞춘 진은, 그에게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신을 초조해하는 기색을 읽고는 우스웠다. 설마 내가 무슨 소리라도 낼까 봐? 그와 자신, 둘만이라면 그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일을 서슴지 않고 벌이지만, 다른 누군가가 관련되면 극도로 소심해지는 것을 모르니 그러는 것이다. 그가 다른 누군가에게 곤란한 상황이 되는 것은 진 스스로가 결코 원하지 않는 바인데.

그래서 놀려 주고 싶어 장난꾸러기처럼 빙글거렸더니, 닉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진의 몸속에 자리한 존재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그가 경고 조로 고개를 저었지만, 그의 어깨에 놓여 있던 진의 손가락은 태양신 같은 금빛 머리카락으로 기어들어 갔다. 머릿속을 살살 긁어 대자, 다시 그가 크게 꿈틀했다. 아랫배에 전해진 그 움직임을 삭이기 위해 진은 입을 벌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긴 오빠일 리 없지.”

중얼거림에 이어 ‘대체 누가 남의 온실에서 못된 짓을 하느냐.’는 중얼거림이 점차 작아지는 것으로 보아 다시 성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오랑주리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 것이 누구인지, 파티에 참석한 이들 중 보이지 않는 이들을 가려내기 위해 재빨리 성으로 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닉과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공작가의 영애였지만, 고상한 귀족의 탈 뒤에 은근히 심술궂고 음흉한 마음을 감추고 있는 것을 진은 알고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웨즐리家 사람 중에 닉 말고 진이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진이 속삭였다.

“못된 짓이 뭐지?”

닉이 두 손으로 엉덩이를 감싸 쥐고 거세게 당겼다.

“이런 짓.”

얼마간 지체되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할 듯 이후에 그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어쩌면 빅토리아가 그를 찾으러 나왔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그를 찾는다는 뜻이기도 하니, 서둘러 돌아가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지만.

물론 그렇게 돌아가는 그도, 오렌지 나무 사이의 벤치에 가슴까지 밀려 올라간 잠옷 아래로 두 다리를 여전히 활짝 벌린 자신을 두고 돌아서기는 아쉬웠을 것이다. 평소라면 한두 번쯤은 더 했을 테니.

진은 그가 조금이라도 더 아쉬워했으면 하는 생각에 다리 하나를 슬쩍 들어 세웠다. 그녀가 의도하는 바를 잘 알고 있다는 듯,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넥타이를 바로잡으며 그가 중얼거렸다.

“오늘은 더 이상 안 돼. 내일 다시.”

“어디에서 보는데?”

진이 부어오른 입술을 달싹여 속삭였다. 닉처럼 평상시의 톤으로 말해도 누가 듣는 이는 없겠지만,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그를 몰래 훔친 대가로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오전에 승마를 갈 거야.”

숲속 작은 집에서 보자는 말이었다.

진은 자전거를 타고 갈 것이다. 고용주의 말을 마음대로 탈 수도 없지만, 그 큰 짐승은 무섭기만 해서 내어 준다고 해도 결코 타고 싶지 않아서 그녀는 자전거를 이용해 너른 영지를 오가곤 했으니까.

오두막집에서 보려면 그만하는 것이 맞다. 오늘 밤 무리하면 내일 자전거 타는 것을 그가 허락지 않을 테니까.

대신 오두막집에 간 뒤에는 마구 무리를 할 수 있다. 한적한 숲에 자리한 그곳에서는 밖에서 문고리를 흔들며 훼방 놓을 사람도 없고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트리 하우스처럼 늘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으니까.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매무새를 가다듬은 닉이 허리를 깊이 숙여 입가에 키스해 왔다. 진도 더 이상 그를 붙잡지 않고 그저 입술만 살짝 들어 올려 입맞춤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잊지 않았다.

“입에서 내 냄새가 나.”

닉은 세찬 움직임 중에 간혹 그녀를 밀어 내고는 그녀의 아래를 한참이나 빨아 대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그럴 때면 입에서 민망한 냄새가 나곤 했고 오늘도 어김없었다. 물론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어 말하는 것은 민망함을 알리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닉은 예상대로 목울대가 꿈틀하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다가 자제력을 발휘해 얼른 거두었다. 이제 그는 진의 바람대로 더 아쉬워할 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 말을 타고 나갈지도 모르고.

모두 다, 작년에 자신이 그렇게나 애걸하고 매달릴 때마다 매번 냉정하게 뿌리치던 더닝튼 후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때를 상기시켜서 그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잠시 잠깐 놀리려다가 그가 다시 도덕성을 되찾게 되어 자신을 외면하면 곤란한 것은 저일 될 테니까.

자신이 가고 나면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라는 그의 말대로, 오랑주리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진은 몸을 일으켰다. 다리를 오므리는 중에 아랫배에 약간의 뻐근함이 스쳐 갔지만, 평소처럼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모으는 데에 집중했다.

벤치 아래에 떨어진 팬티를 주워 드는데, 그 옆으로 떨어진 희멀건 액체가 눈에 들어왔다. 볼 때마다 어쩐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지난봄에 첫 생리를 시작한 이후로 닉은 절대로 그녀의 몸속에 사정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도 마찬가지로 사정 직전에 몸을 빼내어 바닥에 쏟아 낸 흔적이다.

솔직히 전에는 정신적인 면이 많았기에 육체적인 쾌락이 그리 우선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초경 이후, 그가 자신의 몸속에 파정하던 때 느끼던 정신적인 충족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게 서운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졸랐지만 닉은 강경했다.

‘안 돼.’

‘돼!’

‘안 돼. 널 위해서야.’

히잉…… 널 위해서라니. 그 말 한마디를 뱉고 나면 그는 어떤 말로도 꿈쩍하지 않았다. 단 한 번 금기를 깬 것만으로도 족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계속 조른다면 이 모든 걸 그만두겠다는 협박을 한 적이 있으니, 진도 적당한 선에서 조르기를 멈추곤 했다.

아니, 실제 그가 그래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제 바람을 전하는 정도라고 하는 것이 맞았다. 금기를 깼던 그가 얼마나 경직됐었는지를 모르지 않으니.

‘괜찮아?’

전화를 걸어온 그는 그렇게 물었었다. 괜찮은 게 어떤 건데? 생리를 하는 것, 아니면 하지 않는 것? 내 몸, 아니면 내 마음?

그때처럼 그의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은 물음을 다시 듣는 것은 자신도 싫긴 했지만…….

숲속의 작은 집에서 함께할 때의 기억이었다. 작년에 자신이 그를 처음으로 꾀어냈을 때―로라는 남녀 사이의 첫 관계를 그렇게 불렀다― 처녀막이 파열된 이후 혈흔이 다시 비친 것은 한 해 만이었는데, 그것이 첫 생리라는 것도 진은 알아채지 못했다. 솔직히 초경이 너무 늦어져서 자신은 평생 생리를 하지 않을 것 같다며 포기하고 난 다음이었으니까.

조용해진 닉이 그녀를 말 등에 태워서 천천히, 정말 지루해 죽을 정도로 천천히 성으로 돌아와서는, 숲에서 발견했다며 에밀리에게 그녀를 넘겨 줄 때까지도 그의 얼굴이 왜 그리 창백한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주중에 기숙사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을 때, 평소라면 그에게서 전화가 온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순간에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임신. 그가 우려했던 것은 그것이었다.

그만큼 그 주말은 격렬했었다. 학기말 시험에 전념하고자, 그 전 주말에 돌아오지 않은 탓에 2주 만에 돌아온 그는 로라의 말대로라면 ‘쌓인 것’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함께 지낸 금요일이 지나고 토요일에도 그리고 다음 날인 일요일에도 그가 원하는 장소로 가는 진의 아랫도리에서는 여전히 그의 체액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때의 그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유별나게 열광하며 매번 또다시 그녀를 가졌고 두어 주쯤 지난 부활절 방학 끝자락에 그녀는 첫 생리를 시작했다. 따지자면 그들은 가임기 내내 관계를 가진 것이다.

진은 이제 여자가 되어 그에게 더욱더 어필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에만 들떠 있었고, 뭐든지 알고 있는 박학다식한 더닝튼 후작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학교로 돌아가서는, 한 달 후에 그녀가 두 번째 생리를 시작할 때쯤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