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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원하는 동물을 말하고 그것을 제일 빨리 잡아 오는 이에게 상을 내리는 일을 열 번쯤 반복하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눈앞에 산이 쌓였다. 주태원은 마지막에 잡아 온 담비의 결 좋은 털을 보며 계속 싱글벙글거렸다.
“역시 털은 담비의 것이 가장 곱고 예쁘지.”
곁에 선 신하들이 보이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오늘 이 숲에서 담비란 담비는 죄다 씨가 마를 게 분명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들 하지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배포나 성정에 따라 그 끝의 기준은 다른 모양인지, 도대체가 이 황자께선 만족하시는 꼴을 보이는 일이 없다. 잡혀갈까 두려워 다들 입 밖에 내지 못할 뿐 궁인들 사이에서 주태원의 별명은 아귀였다. 먹어도 먹어도 채우지 못할 공복을 가진 저 사내가 황제가 되면 제아무리 재물이 쌀처럼 넘치는 양영이라도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 모두 각오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도성까지 가는 데도 한참이니, 그동안 딱 오십 마리만 잡아 오면 되겠어.”
활을 들고 꿇어앉아 있던 병사들이 모두 움칠했다. 불가능한 일을 던져 주고 해 오라 억지를 쓰는 것에 다들 신물이 난 탓이었다. 의자에 앉아 먼 곳만 보고 있던 주태원은 시선을 눈치채자마자 옆을 보며 ‘음?’ 하고 입을 뗐다.
“왜. 설마 못 하느냐?”
“저하, 그것이…….”
“그것이 뭐.”
“……아무래도 숲에 사는 동물들의 수가 정해져 있는 데다 또 저희도 쉰 마리나 잡기엔 사람이 부족합니다.”
대장이란 이유로 더듬더듬 말을 뱉은 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수가 틀리면 채찍부터 드는 성정이라고 했다. 그들은 정식 병사가 아니라 주태원이 궐 밖에서 놀기 위해 한시적으로 뽑은 이들이기에 더더욱,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허면 사람을 더 구하면 되지.”
아니나 다를까, 말을 끝맺기 무섭게 의자가 밀리고 커다란 비단신이 그의 앞에서 멈췄다. 말에 웃음기가 묻었다 하여 속아 넘어가기엔, 뒤틀린 속이 빤히 보인다. 사내가 이를 딱 악물고 죽을 각오로 말했다.
“서북문 앞은 원래 사람의 수가 적어서 늘 기근에 시달리는 곳입니다. 여기서 더 구하려 해도 여의치 않습니다, 저하.”
지평 끝에서 불어온 싸늘한 바람만이 땅을 훑었다. 주태원은 눈앞에 있는 이를 죽일까 살릴까 하는 눈으로 잠시 보다가 그 뒤에 조르륵 앉아 있는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는 가서 사냥을 시작해라. 쉰 마리를 못 잡으면 돌아올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에 사내는 질끈 눈을 감고, 나머지는 모두 혼비백산하며 줄행랑치듯 사냥터로 나섰다. 텅 빈 공터에 꿇어앉은 사내와 주태원만 남자 어디선가 챙강, 하고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흥을 깬 것을 생각하면 이대로 죽이는 게 맞긴 할 텐데…….”
말을 맺기 무섭게 사내의 목에 쇠줄로 된 채찍이 와 닿았다.
“오늘 내 기분이 유달리 좋으니 한 번만 기회를 주마.”
언뜻 희망 섞인 눈으로 고개를 들던 사내는, 바로 이어지는 말에 절망으로 젖어 든 채 몸을 떨었다.
“지금부터 내가 잡으라는 것은 무엇이든 잡아라. 한 마리 놓칠 때마다 팔다리를 자를 테니 쉴 생각은 하지 말고.”
“무, 무엇이든요?”
“그래, 무엇이든.”
“언제까지…….”
“그거야 내 마음이 풀릴 때까지지.”
길게 찢어진 입술이 웃는 것을 보며 주변에 있는 병사들이 다 같이 등을 떨었다. 이미 오전 내내 활을 당긴 사내의 팔 근육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인 것을 알아도, 누구 하나 주태원의 뜻을 거스를 순 없었다.
양영 땅에 살아 움직이는 것은 그 호흡마저 황제의 것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양영의 악습이지만 현 황제에서 황자 주태원에게로 권력이 이양된 요즘, 더욱 지독한 것으로 변하여 주변 이들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활시위가 자꾸 느려지는구나. 내가 기껏 기회를 줬는데 내 호의를 걷어차는 것이냐, 지금?”
말을 탄 주태원이 평야 한복판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갈 때마다, 그리고 보이는 족족 날아가는 새까지 잡으라 시키는 것을 해낼 때마다 사내의 호흡은 더욱 거칠게 달아올랐다. 해가 저무는 동안 혼자 수십 개의 활을 당기던 그의 무릎이 꺾일 때쯤 주태원의 눈이 마지막으로 향한 것은 작은 토끼였다. 총총히 뛰어가는 것을 보며 손으로 가리키자 사내가 숨을 가다듬고 활을 겨눴다. 시위를 단단히 잡고 줄을 걸었다 놓은 순간,
“어?”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하나가 사내의 화살을 튕겨 내고 그들의 발치에 박혔다.
“다들 저하를 지켜라!”
순식간에 사병들이 주태원을 감쌌다. 살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결연하게 칼을 겨누는 그들의 앞에 곧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인이 나타났다.
“이건 또 참…….”
재밌는 일이구나. 부채로 입을 가린 채 웃는 주태원의 음성에는 흥미가 서리고,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의 등골에는 오싹하게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
호연의 일행이 평야에 들어선 것은 단순히 대로가 아니라 산길을 타는 편이 편하겠다는 라해의 말 때문이었다. 양영은 만나는 고을마다 죄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통에 달리는 데 속도도 낼 수 없고, 성문 하나 건널 때면 무슨 놈의 확인을 그리 많이 하는지 아주 하루 반나절씩 시간을 잡아먹는 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척국의 황궁을 떠난 순간부터 내내 고생한 호연이 행여 골병이라도 들까, 네 명의 사내는 모두 쉬는 일도 마다하고 수도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잠깐만.”
그러다 후후, 기합을 넣고 강 옆을 지날 무렵 창문을 열고 무언가 유심히 보던 호연이 가마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종이짝마냥 가벼워진 것을 지고 있다가, 가마꾼들도 호연의 곁으로 다가섰다. 평야에 사는 이들이 원래 그렇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눈과 귀가 좋으신 공주님이신지라 자신들은 실눈을 떠도 뭐가 보이질 않았다. 가만 보니 호연도 보는 것과 더불어 뭔가를 들으며 상황을 가늠하는 것 같았다.
“잠시 좀 다녀와야겠어.”
기다리라고 손짓하기에, 수풀로 다가가는 호연을 그냥 쳐다만 봤다. 곧 척국 제일가는 명궁의 활이 반달처럼 휘어지고 눈 끝이 겨냥한 곳으로 활시위가 놓아졌다. 챙, 하는 소리와 우수수 병사들이 몰려드는 소리. 가마꾼들이 본능적으로 일어서는데도, 호연은 그런 그들을 뒤로한 채 한가로이 걸어 홀로 평야로 나아갔다.
“누구냐!”
활을 들고 나오는 호연에게 열 명이 넘는 병사가 창을 겨눈다. 토끼를 쏘려던 이는 언뜻 보기에도 무리한 흔적이 물씬 보이는 팔을 덜덜 떨며 돌아가는 판국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건 또 참 재밌는 일…….”
그들 모두의 얼굴을 한 번씩 스친 호연의 시선은 말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내와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리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채 말을 맺기도 전, 호연의 음성이 그의 말허리를 갈랐다.
“가난하십니까?”
전후사정 따지기엔, 저곳에서 활을 들고 죽어 가는 병자의 상태가 심각해 보여서였다. 그녀는 본디 말보다 행동이 우선인 성정이었고, 특히나 아픈 이가 생기면 가서 말을 전하라고 하는 대신 둘러업고 뛰는 데 이골이 난 척국의 황족이었다.
“나보고 가난하냐고?”
다만 애석한 점은 그처럼 급박한 성정인 탓에 저지르는 실수 역시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 윤기가 흐르는 비단옷을 걸치고 있는 사내를 보고 할 말은 아니었다고, 뒤늦게야 생각나는 지금처럼.
“눈은 달고 다니느냐?”
본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본 사내가 입을 연다. 눈치 없는 호연이라도 저게 짜증이 스며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어조였다.
“허면 혹시 배가 고프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기, 다 죽어 가는 사내가 마지막으로 겨눴던 토끼의 모양새를 생각하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아 다시 물었다. 가난하진 않아도 사람이라면 배가 고플 수는 있지. 하니 이건 맞지 않을까, 싶어 물었으나…….
“대꾸가 갈수록 가관이구나.”
정작 그 말을 듣는 사내는 세상 어디서 이런 천치가 기어 나왔는지 모르겠단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모습을 보아하니 북방인 같은데, 설마 척국에서 온 것이냐?”
대답 없는 호연의 모습에 확신을 얻었는지, 주태원이 피식 헛웃음을 짓는다.
“맞나 보네. 미개하단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안 그래도 키가 크고 머리는 흑단 같고 눈의 색도 아주 짙어 겉모습마저 바위 같은 여인이었다. 활을 들고 있는 손도 투박한 것을 보고 부채 뒤에 숨어 있던 입이 움직였다.
“어딜 봐서 내가 가난하고 배가 고파 보이지? 양영의 귀족이 네 나라 거지만도 못해 보이느냐?”
말이 어찌나 살벌하던지, 주태원의 심보를 아는 이들은 이제 눈 딱 감고 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참이었다. 특히나 마지막 한 발의 활만 쏘아 맞췄다면 이 지옥 같은 사냥이 끝났을지 모르는 사내는 그야말로 원수 보듯 호연을 쳐다보았다.
“……가난하지도, 배가 고프지도 않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러나 제 앞에서 눈 똑바로 뜨고 말하는 이의 속도 못 읽는 호연이 주변에 흐르는 분위기를 읽을 리는 아주 만무했다. 그리하여 또다시 툭, 뱉지 말았어야 할 말이 밖으로 나왔다.
“하면 그냥 모지리인가…….”
제법 온화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대치한 평야에만 한겨울이 온 듯 쨍, 하는 얼음 소리가 울렸다. 다들 경악한 얼굴로 입을 벌리는데, 호연은 그런 그들의 표정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어쩐지 사냥하면서 비단신을 신고 오기에 미쳤는가 했더니 진짜 미친 사람이었나…….”
서서히 그곳에 서 있던 모든 사내의 고개가 다 땅으로 처박히기 시작했다. 여인이 입을 열면 열수록 황자에게서 쏟아지는 살기가 점차 거세졌기 때문이다.
“저거 설마 내게 하는 말은 아니겠지?”
기가 차다는 듯 웃은 황자의 음성은 생각보다 노기가 묻어 있지 않았다. 너무 황당한 탓에 화내는 것조차 잊은 듯했는데, 그게 얼마나 가 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 이 사태의 유일한 맹점이었다.
“가난한 것도 아니고, 배도 고프지 않은데 왜 새끼를 밴 짐승을 잡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방에 먹을 것이 널려 있는 양영 땅에서.”
상황이 그리 흐르거나 말거나 손가락까지 접어 가며 하나씩,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을 되짚던 호연이 다시 주태원과 눈을 맞춘 것은 그때였다.
“뭐?”
“왜 새끼 밴 짐승을 잡는지 모르겠다고요. 그리 잔인한 일을 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질 않습니까.”
흑요석 같은 눈에는 오롯이 궁금증만 담겨 있다. 활을 당기려 코앞까지 갔던 사내도 몰랐던 일을 저 멀리서 알아본 여인의 말에 주태원이 눈썹을 치켜떴다.
“……제법 아깝긴 하다만.”
허나 아깝다고 다 주워 먹기엔 딱 봐도 탈이 많을 것 같은 인상이다. 주식을 먹기도 바쁜 마당에 별식까지 챙길 순 없는 노릇이라, 그는 새카만 바다 같은 호연의 눈을 보고 있다가 아쉬움을 거두며 싱긋 웃었다.
“여봐라, 뭣들 하느냐. 저 맹랑한 것을 잡아다 꿇리지 않고.”
“네?”
“네, 는 무슨. 내가 얌전히 있다고 너희까지 얌전히 있으면 안 되지. 너희가 지금 살았다고 좀 있다가도 살 성싶어?”
가까이 있는 병사를 발로 툭툭 차며 폭언을 퍼부으니 얼어 있던 이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호연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그때, 지켜보기만 하던 호연의 호위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그 앞에 주르륵 섰다.
“공주님, 뒤로 물러나세요!”
순식간에 눈앞에 벽이 생긴다. 다들 구척장신에, 해가 져서 쌀쌀한 이때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어린아이 몸통만 한 두꺼운 허벅지를 보니 그 앞에 창을 들고 있는 양영의 사내들이 한없이 가냘프게 보였다. 다들 이게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을 못 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주태원만이 방금 전 귓가에 울린 말을 곱씹었다.
“공주님?”
놀란 눈으로 뒤를 바라본 주태원이 이내 호연의 외형을 샅샅이 훑었다. 내도록 시선을 피하지 않고 물끄러미 위를 보는 여인. 행색만 봐선 저 가마꾼들이랑 뭐가 다른지 알 수 없을 만큼 초라한데도 기백이 있어 이상했다. 그가 여태까지 무엇을 놓쳤는지, 저 공주님 소리를 들으니 알겠다.
“다들 그만.”
귓불에 세 갈래로 찢긴 자국. 저건 척국의 황족에게만 행하는 의식이었다. 재물을 탐낼 수도 없고 탐내서도 안 되는 가난한 나라에서 황족이 모범을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라 들었는데 분명 그를 알고 있었음에도 흐릿한 여인의 인상에 밀려 놓치고 말았다.
“그래, 그냥 척국인이 아니라 공주라고?”
뒤로 물러난 병사들을 사이에 두고 한참 동안 호연을 쳐다봤다. 부채 위로 눈밖에 보이지 않는 그를 호연 역시 뚫어져라 봤다. 그 얼굴이 말갛고 청명한 것에, 어느새 그의 입가엔 미소가 고이고 있었다. 서 있는 자세가 곧고 웬만한 사내가 덤벼도 이길 수 있을 것처럼 유연한 몸. 그게 황족의 것이라니, 별식으로 치부하려 했으나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명운.”
속으로 읊조리던 말이 끝난 순간, 그는 활을 들고 망부석처럼 서 있는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을 불린 명운이 흠칫하며 한 발을 뒤로 물렀다.
“오늘 고생했다. 상을 주고 싶으니 이리 가까이 와 봐.”
원하는 동물을 말하고 그것을 제일 빨리 잡아 오는 이에게 상을 내리는 일을 열 번쯤 반복하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눈앞에 산이 쌓였다. 주태원은 마지막에 잡아 온 담비의 결 좋은 털을 보며 계속 싱글벙글거렸다.
“역시 털은 담비의 것이 가장 곱고 예쁘지.”
곁에 선 신하들이 보이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오늘 이 숲에서 담비란 담비는 죄다 씨가 마를 게 분명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들 하지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배포나 성정에 따라 그 끝의 기준은 다른 모양인지, 도대체가 이 황자께선 만족하시는 꼴을 보이는 일이 없다. 잡혀갈까 두려워 다들 입 밖에 내지 못할 뿐 궁인들 사이에서 주태원의 별명은 아귀였다. 먹어도 먹어도 채우지 못할 공복을 가진 저 사내가 황제가 되면 제아무리 재물이 쌀처럼 넘치는 양영이라도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 모두 각오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도성까지 가는 데도 한참이니, 그동안 딱 오십 마리만 잡아 오면 되겠어.”
활을 들고 꿇어앉아 있던 병사들이 모두 움칠했다. 불가능한 일을 던져 주고 해 오라 억지를 쓰는 것에 다들 신물이 난 탓이었다. 의자에 앉아 먼 곳만 보고 있던 주태원은 시선을 눈치채자마자 옆을 보며 ‘음?’ 하고 입을 뗐다.
“왜. 설마 못 하느냐?”
“저하, 그것이…….”
“그것이 뭐.”
“……아무래도 숲에 사는 동물들의 수가 정해져 있는 데다 또 저희도 쉰 마리나 잡기엔 사람이 부족합니다.”
대장이란 이유로 더듬더듬 말을 뱉은 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수가 틀리면 채찍부터 드는 성정이라고 했다. 그들은 정식 병사가 아니라 주태원이 궐 밖에서 놀기 위해 한시적으로 뽑은 이들이기에 더더욱,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허면 사람을 더 구하면 되지.”
아니나 다를까, 말을 끝맺기 무섭게 의자가 밀리고 커다란 비단신이 그의 앞에서 멈췄다. 말에 웃음기가 묻었다 하여 속아 넘어가기엔, 뒤틀린 속이 빤히 보인다. 사내가 이를 딱 악물고 죽을 각오로 말했다.
“서북문 앞은 원래 사람의 수가 적어서 늘 기근에 시달리는 곳입니다. 여기서 더 구하려 해도 여의치 않습니다, 저하.”
지평 끝에서 불어온 싸늘한 바람만이 땅을 훑었다. 주태원은 눈앞에 있는 이를 죽일까 살릴까 하는 눈으로 잠시 보다가 그 뒤에 조르륵 앉아 있는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는 가서 사냥을 시작해라. 쉰 마리를 못 잡으면 돌아올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에 사내는 질끈 눈을 감고, 나머지는 모두 혼비백산하며 줄행랑치듯 사냥터로 나섰다. 텅 빈 공터에 꿇어앉은 사내와 주태원만 남자 어디선가 챙강, 하고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흥을 깬 것을 생각하면 이대로 죽이는 게 맞긴 할 텐데…….”
말을 맺기 무섭게 사내의 목에 쇠줄로 된 채찍이 와 닿았다.
“오늘 내 기분이 유달리 좋으니 한 번만 기회를 주마.”
언뜻 희망 섞인 눈으로 고개를 들던 사내는, 바로 이어지는 말에 절망으로 젖어 든 채 몸을 떨었다.
“지금부터 내가 잡으라는 것은 무엇이든 잡아라. 한 마리 놓칠 때마다 팔다리를 자를 테니 쉴 생각은 하지 말고.”
“무, 무엇이든요?”
“그래, 무엇이든.”
“언제까지…….”
“그거야 내 마음이 풀릴 때까지지.”
길게 찢어진 입술이 웃는 것을 보며 주변에 있는 병사들이 다 같이 등을 떨었다. 이미 오전 내내 활을 당긴 사내의 팔 근육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인 것을 알아도, 누구 하나 주태원의 뜻을 거스를 순 없었다.
양영 땅에 살아 움직이는 것은 그 호흡마저 황제의 것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양영의 악습이지만 현 황제에서 황자 주태원에게로 권력이 이양된 요즘, 더욱 지독한 것으로 변하여 주변 이들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활시위가 자꾸 느려지는구나. 내가 기껏 기회를 줬는데 내 호의를 걷어차는 것이냐, 지금?”
말을 탄 주태원이 평야 한복판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갈 때마다, 그리고 보이는 족족 날아가는 새까지 잡으라 시키는 것을 해낼 때마다 사내의 호흡은 더욱 거칠게 달아올랐다. 해가 저무는 동안 혼자 수십 개의 활을 당기던 그의 무릎이 꺾일 때쯤 주태원의 눈이 마지막으로 향한 것은 작은 토끼였다. 총총히 뛰어가는 것을 보며 손으로 가리키자 사내가 숨을 가다듬고 활을 겨눴다. 시위를 단단히 잡고 줄을 걸었다 놓은 순간,
“어?”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하나가 사내의 화살을 튕겨 내고 그들의 발치에 박혔다.
“다들 저하를 지켜라!”
순식간에 사병들이 주태원을 감쌌다. 살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결연하게 칼을 겨누는 그들의 앞에 곧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인이 나타났다.
“이건 또 참…….”
재밌는 일이구나. 부채로 입을 가린 채 웃는 주태원의 음성에는 흥미가 서리고,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의 등골에는 오싹하게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
호연의 일행이 평야에 들어선 것은 단순히 대로가 아니라 산길을 타는 편이 편하겠다는 라해의 말 때문이었다. 양영은 만나는 고을마다 죄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통에 달리는 데 속도도 낼 수 없고, 성문 하나 건널 때면 무슨 놈의 확인을 그리 많이 하는지 아주 하루 반나절씩 시간을 잡아먹는 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척국의 황궁을 떠난 순간부터 내내 고생한 호연이 행여 골병이라도 들까, 네 명의 사내는 모두 쉬는 일도 마다하고 수도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잠깐만.”
그러다 후후, 기합을 넣고 강 옆을 지날 무렵 창문을 열고 무언가 유심히 보던 호연이 가마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종이짝마냥 가벼워진 것을 지고 있다가, 가마꾼들도 호연의 곁으로 다가섰다. 평야에 사는 이들이 원래 그렇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눈과 귀가 좋으신 공주님이신지라 자신들은 실눈을 떠도 뭐가 보이질 않았다. 가만 보니 호연도 보는 것과 더불어 뭔가를 들으며 상황을 가늠하는 것 같았다.
“잠시 좀 다녀와야겠어.”
기다리라고 손짓하기에, 수풀로 다가가는 호연을 그냥 쳐다만 봤다. 곧 척국 제일가는 명궁의 활이 반달처럼 휘어지고 눈 끝이 겨냥한 곳으로 활시위가 놓아졌다. 챙, 하는 소리와 우수수 병사들이 몰려드는 소리. 가마꾼들이 본능적으로 일어서는데도, 호연은 그런 그들을 뒤로한 채 한가로이 걸어 홀로 평야로 나아갔다.
“누구냐!”
활을 들고 나오는 호연에게 열 명이 넘는 병사가 창을 겨눈다. 토끼를 쏘려던 이는 언뜻 보기에도 무리한 흔적이 물씬 보이는 팔을 덜덜 떨며 돌아가는 판국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건 또 참 재밌는 일…….”
그들 모두의 얼굴을 한 번씩 스친 호연의 시선은 말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내와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리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채 말을 맺기도 전, 호연의 음성이 그의 말허리를 갈랐다.
“가난하십니까?”
전후사정 따지기엔, 저곳에서 활을 들고 죽어 가는 병자의 상태가 심각해 보여서였다. 그녀는 본디 말보다 행동이 우선인 성정이었고, 특히나 아픈 이가 생기면 가서 말을 전하라고 하는 대신 둘러업고 뛰는 데 이골이 난 척국의 황족이었다.
“나보고 가난하냐고?”
다만 애석한 점은 그처럼 급박한 성정인 탓에 저지르는 실수 역시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 윤기가 흐르는 비단옷을 걸치고 있는 사내를 보고 할 말은 아니었다고, 뒤늦게야 생각나는 지금처럼.
“눈은 달고 다니느냐?”
본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본 사내가 입을 연다. 눈치 없는 호연이라도 저게 짜증이 스며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어조였다.
“허면 혹시 배가 고프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기, 다 죽어 가는 사내가 마지막으로 겨눴던 토끼의 모양새를 생각하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아 다시 물었다. 가난하진 않아도 사람이라면 배가 고플 수는 있지. 하니 이건 맞지 않을까, 싶어 물었으나…….
“대꾸가 갈수록 가관이구나.”
정작 그 말을 듣는 사내는 세상 어디서 이런 천치가 기어 나왔는지 모르겠단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모습을 보아하니 북방인 같은데, 설마 척국에서 온 것이냐?”
대답 없는 호연의 모습에 확신을 얻었는지, 주태원이 피식 헛웃음을 짓는다.
“맞나 보네. 미개하단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안 그래도 키가 크고 머리는 흑단 같고 눈의 색도 아주 짙어 겉모습마저 바위 같은 여인이었다. 활을 들고 있는 손도 투박한 것을 보고 부채 뒤에 숨어 있던 입이 움직였다.
“어딜 봐서 내가 가난하고 배가 고파 보이지? 양영의 귀족이 네 나라 거지만도 못해 보이느냐?”
말이 어찌나 살벌하던지, 주태원의 심보를 아는 이들은 이제 눈 딱 감고 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참이었다. 특히나 마지막 한 발의 활만 쏘아 맞췄다면 이 지옥 같은 사냥이 끝났을지 모르는 사내는 그야말로 원수 보듯 호연을 쳐다보았다.
“……가난하지도, 배가 고프지도 않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러나 제 앞에서 눈 똑바로 뜨고 말하는 이의 속도 못 읽는 호연이 주변에 흐르는 분위기를 읽을 리는 아주 만무했다. 그리하여 또다시 툭, 뱉지 말았어야 할 말이 밖으로 나왔다.
“하면 그냥 모지리인가…….”
제법 온화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대치한 평야에만 한겨울이 온 듯 쨍, 하는 얼음 소리가 울렸다. 다들 경악한 얼굴로 입을 벌리는데, 호연은 그런 그들의 표정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어쩐지 사냥하면서 비단신을 신고 오기에 미쳤는가 했더니 진짜 미친 사람이었나…….”
서서히 그곳에 서 있던 모든 사내의 고개가 다 땅으로 처박히기 시작했다. 여인이 입을 열면 열수록 황자에게서 쏟아지는 살기가 점차 거세졌기 때문이다.
“저거 설마 내게 하는 말은 아니겠지?”
기가 차다는 듯 웃은 황자의 음성은 생각보다 노기가 묻어 있지 않았다. 너무 황당한 탓에 화내는 것조차 잊은 듯했는데, 그게 얼마나 가 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 이 사태의 유일한 맹점이었다.
“가난한 것도 아니고, 배도 고프지 않은데 왜 새끼를 밴 짐승을 잡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방에 먹을 것이 널려 있는 양영 땅에서.”
상황이 그리 흐르거나 말거나 손가락까지 접어 가며 하나씩,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을 되짚던 호연이 다시 주태원과 눈을 맞춘 것은 그때였다.
“뭐?”
“왜 새끼 밴 짐승을 잡는지 모르겠다고요. 그리 잔인한 일을 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질 않습니까.”
흑요석 같은 눈에는 오롯이 궁금증만 담겨 있다. 활을 당기려 코앞까지 갔던 사내도 몰랐던 일을 저 멀리서 알아본 여인의 말에 주태원이 눈썹을 치켜떴다.
“……제법 아깝긴 하다만.”
허나 아깝다고 다 주워 먹기엔 딱 봐도 탈이 많을 것 같은 인상이다. 주식을 먹기도 바쁜 마당에 별식까지 챙길 순 없는 노릇이라, 그는 새카만 바다 같은 호연의 눈을 보고 있다가 아쉬움을 거두며 싱긋 웃었다.
“여봐라, 뭣들 하느냐. 저 맹랑한 것을 잡아다 꿇리지 않고.”
“네?”
“네, 는 무슨. 내가 얌전히 있다고 너희까지 얌전히 있으면 안 되지. 너희가 지금 살았다고 좀 있다가도 살 성싶어?”
가까이 있는 병사를 발로 툭툭 차며 폭언을 퍼부으니 얼어 있던 이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호연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그때, 지켜보기만 하던 호연의 호위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그 앞에 주르륵 섰다.
“공주님, 뒤로 물러나세요!”
순식간에 눈앞에 벽이 생긴다. 다들 구척장신에, 해가 져서 쌀쌀한 이때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어린아이 몸통만 한 두꺼운 허벅지를 보니 그 앞에 창을 들고 있는 양영의 사내들이 한없이 가냘프게 보였다. 다들 이게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을 못 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주태원만이 방금 전 귓가에 울린 말을 곱씹었다.
“공주님?”
놀란 눈으로 뒤를 바라본 주태원이 이내 호연의 외형을 샅샅이 훑었다. 내도록 시선을 피하지 않고 물끄러미 위를 보는 여인. 행색만 봐선 저 가마꾼들이랑 뭐가 다른지 알 수 없을 만큼 초라한데도 기백이 있어 이상했다. 그가 여태까지 무엇을 놓쳤는지, 저 공주님 소리를 들으니 알겠다.
“다들 그만.”
귓불에 세 갈래로 찢긴 자국. 저건 척국의 황족에게만 행하는 의식이었다. 재물을 탐낼 수도 없고 탐내서도 안 되는 가난한 나라에서 황족이 모범을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라 들었는데 분명 그를 알고 있었음에도 흐릿한 여인의 인상에 밀려 놓치고 말았다.
“그래, 그냥 척국인이 아니라 공주라고?”
뒤로 물러난 병사들을 사이에 두고 한참 동안 호연을 쳐다봤다. 부채 위로 눈밖에 보이지 않는 그를 호연 역시 뚫어져라 봤다. 그 얼굴이 말갛고 청명한 것에, 어느새 그의 입가엔 미소가 고이고 있었다. 서 있는 자세가 곧고 웬만한 사내가 덤벼도 이길 수 있을 것처럼 유연한 몸. 그게 황족의 것이라니, 별식으로 치부하려 했으나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명운.”
속으로 읊조리던 말이 끝난 순간, 그는 활을 들고 망부석처럼 서 있는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을 불린 명운이 흠칫하며 한 발을 뒤로 물렀다.
“오늘 고생했다. 상을 주고 싶으니 이리 가까이 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