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꽃은 여전히 꿈을 꾼다
2화
마녀라고 광고하고 있는 건가? ‘나 잡아가시오~’ 하고? 하지만 말이지. 아를루에는 마법사와 마법 물약 상점은 있을지언정 마녀는 없다고!
마법을 쓸 수 있는 여자들은 마녀로 몰리기 일쑤. 따라서 ‘마녀 같은’ 전형적인 옷차림은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제디스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다. 멍하게 있던 그는 나름대로 최선의 결론을 내렸다.
‘물약 상점 유니폼이구나!’
그러자 조금은 긴장이 풀린다. 하기야 그런 나사 풀린 정신머리를 가졌을 리가 없지.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벽을 한가득 채운 책장에 빽빽하게 마법약 관련 도서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눈길을 끄는 건 책 사이사이로 비죽 꽂혀 있는 손때 묻은 레시피들. 장식용이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알 수 있었다.
저 중에 자신이 찾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정신을 영상으로 보여 주는 물약 같은 것.
그러나 제디스는 책장을 향하는 대신 또 다른 관심사의 뒤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냄비 앞에 서 있는 고깔 마녀는 그런 상황에서도 미동이 없었다.
그녀는 오른손엔 국자, 왼손엔 레시피 종이와 약초 주머니를 든 채로 거대한 냄비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림자가 졌을 텐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물약 제조에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저 냄비 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길래?
제디스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그녀와 함께 기다리며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열다섯…… 에라 모르겠다. 백!
“여기에 개구리 뒷다리도 넣을 건가?”
“흐끼야악! 아엄마아……!”
마녀로 추정되는 여자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들고 있던 국자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휙! 하고 높이 날아간 국자는 바닥에 부딪혔다가 튀어 올랐다가 다시 떨어졌으나, 그 후로도 국자답지 않은 탄력성을 자랑하며 멀리멀리 굴러갔다.
쨍그랑, 탕 탕 탕 타다닥 쿵.
결국, 국자는 책장 바로 밑까지 가서야 멈췄다. 중력을 거스르고 다시 마녀에게 돌아오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워…….”
잠시 말을 잊고 국자를 보던 제디스는 고개를 돌려 아직 주저앉아 있는 여자를 슬쩍 바라봤다.
그렇게나 벗겨 버리고 싶던 고깔모자는 이미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녔고, 여자의 얼굴 위로 결 좋은 흑발이 엉망으로 헝클어져 그녀가 느꼈을 기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보는 사람조차 기괴해지는 모습이었다.
제디스는 멋쩍은 마음에 자신의 뒤통수를 살짝 쓰다듬으며 사과했다.
“미안, 많이 놀랐어?”
그러나 경쾌한 말투로 이어진 질문은 그의 사과에 진정성 같은 건 전혀 없었다는 걸 알려 줬다. 그는 귀족이라는 게 확실한 듯, 그네들이 평민에게 흔히 그러는 편한 말투를 썼다.
“그런데 여기가 마녀의 물약 창고인가?”
“뭐야, 여기 마녀 같은 건 없어……요.”
조금 날카롭긴 하지만 예쁜 목소리였다. 조금씩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묘하게 신경 쓰이는 하르멜 특유의 섹시한 발음도 그렇고. 그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상대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넘어지면서 부딪힌 곳이 꽤 아픈지 금방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통증이 느껴지는 곳을 문지르며 문제의 침입자를 관찰했다.
수상하게만 느껴지는 남자는 잘 정돈되어 빛나는 황금빛 머리칼을 가진 꽃미남이었다. 중죄를 저질렀어도 얼굴만으로도 용서를 받을 것 같은 외모.
‘분명 범죄를 저질러 놓고 얼굴로 용서받았을 거야!’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내쫓는 게 낫겠다. 그러나 그 전에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얼굴만 믿고 사는 인간인가? 뻔뻔하게 남의 작업실에 쳐들어온 것도 그렇고, 비현실적인 외모도 그렇고, 또 고급스러운 옷을 보면 아무래도 돈 많은 귀족 마법사 영식이 아닌가 싶은데.
‘근데 정말 저런 남자는 처음 봐. 어쩜 저렇게 생겼지?’
불쾌함과 호기심이 한데 섞여 질문으로 튀어나왔다.
“대체 누구신데 여기까지 오셨어요?”
“나? 제디스 에스테반. 마법 물약을 찾으러 왔지. 그러는 너는 누구야?”
이렇게 말한 그는 손을 들어 허공에 원을 그리고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에 따라 저 멀리 굴러갔던 국자가 서서히 날아와 바닥에 앉아 있는 여자의 앞치마 위에 떨어졌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마법의 나라 아를루에서도 마법 물약이란 건 희귀한 아이템에 속한다. 아무나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법사라고 해서 모두 물약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 이런 비싼 아이템을 찾는 인간들은 괴짜 같은 마법사들이 대부분.
‘마법사 손님인가? 그래, 마법사 손님일 수밖에 없겠지. 그래, 가게 출입구는 무시하고 물약 제조실을 쳐들어오는 저런 괴짜들!’
여자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치마를 툭툭 털어 낸 그녀는 생각보다 큰 키에 살짝 야릇한 눈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
“아로로 포션에서 일하는 전담 물약 제조사예요. 아나이스라고 부르세요. 실례지만, 여긴 어떻게 들어오신 거죠?”
그렇게 말하며 제디스라 소개한 남자 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물결치는 머리카락은 굽이굽이 허공을 자유자재로 유영했다. 그 뒤로 요정의 날개 가루에서 떨어질 법한 반짝임도 보이는 것 같았다.
제디스는 자신의 눈을 사로잡는 머리카락의 움직임을 열심히 좇았다.
정말 마법 가루라도 뿌려 놨나. 겨우 흑발에 불과한데 어찌 저리도 반짝반짝 빛날 수가 있냐고?
제디스 자신은 지금 마법을 쓰고 있지 않으니 저 머리카락이 이토록 느리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필시 저 여자가 마녀이거나, 마녀이거나, 또 마녀이기 때문일 테다. 그렇지 않으면 제게 몹쓸 마법을 걸었거나.
후! 아무렴 마법사 체면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 아, 머리카락의 마법에서 겨우 빠져나오자마자 이번에는 얼굴의 마법에 걸렸다. 젠장!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낯선 여자의 얼굴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충격적일 정도의 대단한 미모 때문일까.
홀릴 것처럼 깊은 아름다운 눈매와 날렵한 콧날 옆으로 발그레한 뺨이 보여서 그 옆으로 눈을 돌리면 다시 유려한 턱선이 나오고,
그 옆을 따라 내려오면 그 근처에 또 불그스름하고 도톰한 입술이 있다.
그 매력적이고 부드러운 입술선을 타다 보면 다시 콧날이 보이고,
그걸 따라 올라가면 또 보라색 눈동자가. 얼굴에서 눈을 떼면 다시 빛나는 흑발이 보이고…….
취향은 갈릴 수 있어도 아름답다는 것엔 이견이 없을 미녀였다. 더불어 욕지기가 나왔다. 망할! 난 몰라.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정말 마력이 있는 여자를 발견해 버렸잖아.
제디스는 얼빠진 표정을 짓고는 조금 차갑다 싶은 말투로 물었다.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아나이스 또한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잘생기고 젊은 남자 마법사를 관찰하고는 있었으나, 그가 던진 물음은 정말 의외의 것이었다.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왜 여기에 있냐니?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거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람?
마법사가 괴짜라고 해서 멍청이는 절대로 아닐 텐데 이상한 질문이었다.
아나이스는 고민했다. 갑자기 쳐들어온 이 남자가 침입자일까 아니면 방문객일까. 그러다가 가게의 손님일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친절하게 물었다.
“제디스 님, 저희 가게엔 물약을 구하러 오신 건가요? 아니면 스승님을 찾아오셨나요? 여기 오른쪽 문이 가게에서 제조실로 들어오는 유일한 곳인데 대체 어떻게 들어오신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아나이스가 가리킨 문은 그녀가 서 있던 곳에서 바로 눈에 띄는 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남자는 수상함 그 자체였다.
“내 예전에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어서 재방문 스크롤을 받아 놨었거든. 구석에 처박아 둔 걸 찾느라 이틀이나 걸렸지만.”
아나이스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 깜박거렸다. 그에 따라 긴 속눈썹에 가려져 있던 보라색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발산했다. 그것은 제디스의 눈길을 잡고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
“그런 게 있었나요? 가게 대문이 아니라 제조실에 연결되어 있었나 보네요. 스크롤 좌표를 바꿔 달라고 스승님께 말씀드려 놔야겠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난 아가씨가 만드는 물약을 살 고객인데. 내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구경하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
떼쓰는 꽃미남을 매몰차게 떼어 내기란 조금 어려운 일이라 아나이스는 조금 주저하다가 말했다.
“보는 건 괜찮은데 방해는 하지 마세요. 음, 그럼 저쪽으로 멀리 가 계시는 게 좋겠어요. 사실 마법사에게 마법 물약이란 게 얼마나 흥미로운지는 잘 알겠지만 이렇게 오래 증기에 노출되는 건 좋지 않다고요.”
“왜?”
“모르시진 않으실 텐데요. 마력을 변형시키는 물질이니까요. 마법사들에겐 약이 안 듣는다고 하지만 그것도 정도를 지나치면 독과 비슷하다고요.”
아나이스는 뭐 이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제디스가 물어본 것은 다른 점이었다.
“그러니까 왜 아가씨한텐 괜찮고 나한텐 안 괜찮다는 거지? 게다가 아까 만지고 있던 거 맨드레이크 뿌리 아니었어? 마력이 없다면 지금 그걸 다룰 수가 없을 텐데 그렇다면 아가씨도 위험한 게 아닌가?”
“맨드레이크를 알아보시는 걸 보니 이전에 다뤄 보신 적이 있나 보네요. 제가 대단한 마법사님께 괜한 걱정을 했군요.”
아나이스는 대놓고 긴 한숨을 쉬었다. 이제 꽃미남이건 아니건 슬슬 귀찮아. 벌써 맨드레이크 가루를 투여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지금쯤은 넣어야 한단 말이야. 저 남자는 대체 왜 안 돌아가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웬만한 마력으로는 다룰 수 없는 재료잖아. 아가씨 혹시 마녀야?”
마녀라니? 사실 제디스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녀란 것은 이미 씨가 마를 대로 말랐으며, 혹시라도 마녀들의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황제가 주기적으로 마녀사냥을 하지 않나.
여자들이 마법을 배우는 것을 ‘금지’하진 않았지만, 실상은 의심의 눈길 때문에 금지된 것과 다름없었다. 그들이 마력을 타고난 인재라 하더라도 말이다.
불공평하다고? 치사하다고? 뭐 어쩌겠는가. 웬만한 마법사보다 각성한 마녀가 더 무서운 것을. 기득권이면서 다수이기까지 한 누군가는 미지의 존재를 괜한 소문과 결부시켜 핍박 받게 했다. 매우 멍청한 짓이긴 해도.
‘아무리 하르멜이 변두리 도시라지만 마녀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을 리 없단 말이지.’
제디스는 그저 이 여성이 마녀처럼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었다. 마력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살펴볼수록 평범한 여자는 아닌 듯했다.
2화
마녀라고 광고하고 있는 건가? ‘나 잡아가시오~’ 하고? 하지만 말이지. 아를루에는 마법사와 마법 물약 상점은 있을지언정 마녀는 없다고!
마법을 쓸 수 있는 여자들은 마녀로 몰리기 일쑤. 따라서 ‘마녀 같은’ 전형적인 옷차림은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제디스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다. 멍하게 있던 그는 나름대로 최선의 결론을 내렸다.
‘물약 상점 유니폼이구나!’
그러자 조금은 긴장이 풀린다. 하기야 그런 나사 풀린 정신머리를 가졌을 리가 없지.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벽을 한가득 채운 책장에 빽빽하게 마법약 관련 도서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눈길을 끄는 건 책 사이사이로 비죽 꽂혀 있는 손때 묻은 레시피들. 장식용이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알 수 있었다.
저 중에 자신이 찾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정신을 영상으로 보여 주는 물약 같은 것.
그러나 제디스는 책장을 향하는 대신 또 다른 관심사의 뒤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냄비 앞에 서 있는 고깔 마녀는 그런 상황에서도 미동이 없었다.
그녀는 오른손엔 국자, 왼손엔 레시피 종이와 약초 주머니를 든 채로 거대한 냄비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림자가 졌을 텐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물약 제조에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저 냄비 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길래?
제디스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그녀와 함께 기다리며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열다섯…… 에라 모르겠다. 백!
“여기에 개구리 뒷다리도 넣을 건가?”
“흐끼야악! 아엄마아……!”
마녀로 추정되는 여자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들고 있던 국자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휙! 하고 높이 날아간 국자는 바닥에 부딪혔다가 튀어 올랐다가 다시 떨어졌으나, 그 후로도 국자답지 않은 탄력성을 자랑하며 멀리멀리 굴러갔다.
쨍그랑, 탕 탕 탕 타다닥 쿵.
결국, 국자는 책장 바로 밑까지 가서야 멈췄다. 중력을 거스르고 다시 마녀에게 돌아오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워…….”
잠시 말을 잊고 국자를 보던 제디스는 고개를 돌려 아직 주저앉아 있는 여자를 슬쩍 바라봤다.
그렇게나 벗겨 버리고 싶던 고깔모자는 이미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녔고, 여자의 얼굴 위로 결 좋은 흑발이 엉망으로 헝클어져 그녀가 느꼈을 기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보는 사람조차 기괴해지는 모습이었다.
제디스는 멋쩍은 마음에 자신의 뒤통수를 살짝 쓰다듬으며 사과했다.
“미안, 많이 놀랐어?”
그러나 경쾌한 말투로 이어진 질문은 그의 사과에 진정성 같은 건 전혀 없었다는 걸 알려 줬다. 그는 귀족이라는 게 확실한 듯, 그네들이 평민에게 흔히 그러는 편한 말투를 썼다.
“그런데 여기가 마녀의 물약 창고인가?”
“뭐야, 여기 마녀 같은 건 없어……요.”
조금 날카롭긴 하지만 예쁜 목소리였다. 조금씩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묘하게 신경 쓰이는 하르멜 특유의 섹시한 발음도 그렇고. 그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상대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넘어지면서 부딪힌 곳이 꽤 아픈지 금방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통증이 느껴지는 곳을 문지르며 문제의 침입자를 관찰했다.
수상하게만 느껴지는 남자는 잘 정돈되어 빛나는 황금빛 머리칼을 가진 꽃미남이었다. 중죄를 저질렀어도 얼굴만으로도 용서를 받을 것 같은 외모.
‘분명 범죄를 저질러 놓고 얼굴로 용서받았을 거야!’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내쫓는 게 낫겠다. 그러나 그 전에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얼굴만 믿고 사는 인간인가? 뻔뻔하게 남의 작업실에 쳐들어온 것도 그렇고, 비현실적인 외모도 그렇고, 또 고급스러운 옷을 보면 아무래도 돈 많은 귀족 마법사 영식이 아닌가 싶은데.
‘근데 정말 저런 남자는 처음 봐. 어쩜 저렇게 생겼지?’
불쾌함과 호기심이 한데 섞여 질문으로 튀어나왔다.
“대체 누구신데 여기까지 오셨어요?”
“나? 제디스 에스테반. 마법 물약을 찾으러 왔지. 그러는 너는 누구야?”
이렇게 말한 그는 손을 들어 허공에 원을 그리고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에 따라 저 멀리 굴러갔던 국자가 서서히 날아와 바닥에 앉아 있는 여자의 앞치마 위에 떨어졌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마법의 나라 아를루에서도 마법 물약이란 건 희귀한 아이템에 속한다. 아무나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법사라고 해서 모두 물약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 이런 비싼 아이템을 찾는 인간들은 괴짜 같은 마법사들이 대부분.
‘마법사 손님인가? 그래, 마법사 손님일 수밖에 없겠지. 그래, 가게 출입구는 무시하고 물약 제조실을 쳐들어오는 저런 괴짜들!’
여자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치마를 툭툭 털어 낸 그녀는 생각보다 큰 키에 살짝 야릇한 눈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
“아로로 포션에서 일하는 전담 물약 제조사예요. 아나이스라고 부르세요. 실례지만, 여긴 어떻게 들어오신 거죠?”
그렇게 말하며 제디스라 소개한 남자 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물결치는 머리카락은 굽이굽이 허공을 자유자재로 유영했다. 그 뒤로 요정의 날개 가루에서 떨어질 법한 반짝임도 보이는 것 같았다.
제디스는 자신의 눈을 사로잡는 머리카락의 움직임을 열심히 좇았다.
정말 마법 가루라도 뿌려 놨나. 겨우 흑발에 불과한데 어찌 저리도 반짝반짝 빛날 수가 있냐고?
제디스 자신은 지금 마법을 쓰고 있지 않으니 저 머리카락이 이토록 느리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필시 저 여자가 마녀이거나, 마녀이거나, 또 마녀이기 때문일 테다. 그렇지 않으면 제게 몹쓸 마법을 걸었거나.
후! 아무렴 마법사 체면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 아, 머리카락의 마법에서 겨우 빠져나오자마자 이번에는 얼굴의 마법에 걸렸다. 젠장!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낯선 여자의 얼굴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충격적일 정도의 대단한 미모 때문일까.
홀릴 것처럼 깊은 아름다운 눈매와 날렵한 콧날 옆으로 발그레한 뺨이 보여서 그 옆으로 눈을 돌리면 다시 유려한 턱선이 나오고,
그 옆을 따라 내려오면 그 근처에 또 불그스름하고 도톰한 입술이 있다.
그 매력적이고 부드러운 입술선을 타다 보면 다시 콧날이 보이고,
그걸 따라 올라가면 또 보라색 눈동자가. 얼굴에서 눈을 떼면 다시 빛나는 흑발이 보이고…….
취향은 갈릴 수 있어도 아름답다는 것엔 이견이 없을 미녀였다. 더불어 욕지기가 나왔다. 망할! 난 몰라.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정말 마력이 있는 여자를 발견해 버렸잖아.
제디스는 얼빠진 표정을 짓고는 조금 차갑다 싶은 말투로 물었다.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아나이스 또한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잘생기고 젊은 남자 마법사를 관찰하고는 있었으나, 그가 던진 물음은 정말 의외의 것이었다.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왜 여기에 있냐니?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거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람?
마법사가 괴짜라고 해서 멍청이는 절대로 아닐 텐데 이상한 질문이었다.
아나이스는 고민했다. 갑자기 쳐들어온 이 남자가 침입자일까 아니면 방문객일까. 그러다가 가게의 손님일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친절하게 물었다.
“제디스 님, 저희 가게엔 물약을 구하러 오신 건가요? 아니면 스승님을 찾아오셨나요? 여기 오른쪽 문이 가게에서 제조실로 들어오는 유일한 곳인데 대체 어떻게 들어오신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아나이스가 가리킨 문은 그녀가 서 있던 곳에서 바로 눈에 띄는 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남자는 수상함 그 자체였다.
“내 예전에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어서 재방문 스크롤을 받아 놨었거든. 구석에 처박아 둔 걸 찾느라 이틀이나 걸렸지만.”
아나이스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 깜박거렸다. 그에 따라 긴 속눈썹에 가려져 있던 보라색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발산했다. 그것은 제디스의 눈길을 잡고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
“그런 게 있었나요? 가게 대문이 아니라 제조실에 연결되어 있었나 보네요. 스크롤 좌표를 바꿔 달라고 스승님께 말씀드려 놔야겠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난 아가씨가 만드는 물약을 살 고객인데. 내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구경하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
떼쓰는 꽃미남을 매몰차게 떼어 내기란 조금 어려운 일이라 아나이스는 조금 주저하다가 말했다.
“보는 건 괜찮은데 방해는 하지 마세요. 음, 그럼 저쪽으로 멀리 가 계시는 게 좋겠어요. 사실 마법사에게 마법 물약이란 게 얼마나 흥미로운지는 잘 알겠지만 이렇게 오래 증기에 노출되는 건 좋지 않다고요.”
“왜?”
“모르시진 않으실 텐데요. 마력을 변형시키는 물질이니까요. 마법사들에겐 약이 안 듣는다고 하지만 그것도 정도를 지나치면 독과 비슷하다고요.”
아나이스는 뭐 이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제디스가 물어본 것은 다른 점이었다.
“그러니까 왜 아가씨한텐 괜찮고 나한텐 안 괜찮다는 거지? 게다가 아까 만지고 있던 거 맨드레이크 뿌리 아니었어? 마력이 없다면 지금 그걸 다룰 수가 없을 텐데 그렇다면 아가씨도 위험한 게 아닌가?”
“맨드레이크를 알아보시는 걸 보니 이전에 다뤄 보신 적이 있나 보네요. 제가 대단한 마법사님께 괜한 걱정을 했군요.”
아나이스는 대놓고 긴 한숨을 쉬었다. 이제 꽃미남이건 아니건 슬슬 귀찮아. 벌써 맨드레이크 가루를 투여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지금쯤은 넣어야 한단 말이야. 저 남자는 대체 왜 안 돌아가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웬만한 마력으로는 다룰 수 없는 재료잖아. 아가씨 혹시 마녀야?”
마녀라니? 사실 제디스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녀란 것은 이미 씨가 마를 대로 말랐으며, 혹시라도 마녀들의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황제가 주기적으로 마녀사냥을 하지 않나.
여자들이 마법을 배우는 것을 ‘금지’하진 않았지만, 실상은 의심의 눈길 때문에 금지된 것과 다름없었다. 그들이 마력을 타고난 인재라 하더라도 말이다.
불공평하다고? 치사하다고? 뭐 어쩌겠는가. 웬만한 마법사보다 각성한 마녀가 더 무서운 것을. 기득권이면서 다수이기까지 한 누군가는 미지의 존재를 괜한 소문과 결부시켜 핍박 받게 했다. 매우 멍청한 짓이긴 해도.
‘아무리 하르멜이 변두리 도시라지만 마녀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을 리 없단 말이지.’
제디스는 그저 이 여성이 마녀처럼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었다. 마력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살펴볼수록 평범한 여자는 아닌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