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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머리를 땅에 쾅쾅 찧는 행위에 골이 깨져 그 안의 내용물들이 좔좔 쏟아져 나온다. 명령 체계가 망가졌지만 흐르는 피는 여전했다. 아래 고인 파란 피의 웅덩이가 오히려 점점 더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끄르르륵, 끄륵…….”
찢겨지지 않은 등은 가죽이 한계까지 늘어났고 그 아래 연한 뱃가죽은 올록볼록 물혹처럼 뭔가가 올라왔다 내려갔다 했다. 폭발의 전조였다.
마침내 등가죽이 찢어진 듯 부욱 소리가 나는 순간, 카리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나무 뒤에 완전히 숨었다. 쥬다를 끌어안자마자 둔탁하게 뻥, 소리가 터졌다.
한차례 폭발의 시간이 지나간 후 정적이 흐른다. 투둑, 툭. 나무 주위의 풀 위에 잔여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몸을 숨긴 나무 옆 넓적한 잎에서 파란색의 점액질이 달라붙었다가 아래로 주욱 늘어졌다.
마당은 엉망진창이었다. 어린아이가 물감을 사방으로 흩어 놓은 듯 시야에 보이는 모든 곳이 파랬다. 인형이 있던 자리에는 세 개의 큼직한 살덩어리와 파란색 핏물 웅덩이뿐이었다. 그 자리와 가장 가까운 목재의 계단은 인형의 살점이 더덕더덕 붙었다. 마침 카리나의 시선이 계단에 닿은 순간 살점 덩어리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손에 묻은 물감 같은 파란색을 덧없이 문질렀다.
“아…….”
이건 단순한 파란색이 아니다. 폭발은 연구 일지에서 가장 많이 언급했던 실패 사례였다. 카리나와 쥬다가 제일 신경 써서 고려했던 것도 그것인데, 순식간에 그 노력들이 부질없어졌다. 새로운 기대를 품게 했던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 남은 것이 핏물이라.
카리나는 그대로 선 채 복잡해진 머릿속을 헤집었다. 일단 연구는 실패다. 이번 실험에서 얻은 것은 약초는 인형 제작의 재료로서 효용이 낮다는 것뿐이었다. 노력한 데 비해 허무한 결과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쥬다였다…….
카리나는 뒤돌아 쥬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뒤를 돌아볼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연구에 대해선 이게 실패했으니 다음엔 어떻게 해야겠다라는 계획이 세워지는데 상심한 쥬다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기대의 크기가 다르고, 절실함이 다르다. 카리나는 습관처럼 쥬다가 느끼는 감정을 자신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는 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엉망이잖아.”
안절부절못하는 카리나 옆으로 언제 다가왔는지 쥬다가 불쑥 말했다. 흠칫한 그녀가 돌아보자 쥬다는 카리나가 하염없이 바라보던 마당의 광경에 시선을 못 박고 있었다. 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마당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쥬다가 입을 뗐다.
“미안해, 카리나. 너까지 다치게 한 결과가……. 이건 내일 내가 치울게.”
“아니……. 그럴 필요 뭐 있어. 지금 내가 치울게. 치울까?”
말과 함께 움직이는 카리나의 팔목을 붙잡은 쥬다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치우지 마. 내가 할 테니까.”
그건 손대지 말라는 것처럼 들렸다. 카리나는 그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럼, 그럼…… 식사할래? 준비해 놨는데…….”
아, 지금 이 말을 할 때가 아닌가? 어떤 말을 꺼내야 하는지, 혹시 지금 한 말은 잘못 선택한 화제인 건 아닌지 그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카리나의 복잡한 마음에 비하면 쥬다의 음성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이 결과를 예측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안한데 그것도 나중에 먹을게. 지금은 좀 자고 싶다. 카리나 너도 피곤할 텐데, 쉬어.”
그러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카리나가 잡기를 머뭇거리는 동안 쥬다는 그 말만을 남기고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카리나는 마당에 혼자 남겨진 채 입술을 잘근 씹었다. 별일이 없는 이상 항상 같은 방에서 끌어안고 잤었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따라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카리나는 혼자 식탁 앞에 앉았다. 힘이라곤 하나도 없는 손길로 스튜를 뜨자 맛보다는 먼저 온도가 느껴졌다. 차갑게 식은 스튜가 목구멍을 느릿하게 넘어갔다.
놀랍도록 맛이 없었다. 쥬다가 안 먹은 것이 다행이라고, 카리나는 천천히 생각했다.
더는 스푼을 뜰 수 없었고, 정성 들여 준비한 음식은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말았다.

* * *

다음 날 일어났을 때, 마당은 깨끗이 치워진 상태였다. 곧장 쥬다를 찾아 나섰으나 집 안에서 그를 발견하진 못했다. 초조함에 가슴이 뛰었다. 그녀가 잠들었던 침실의 방문에 붙어 있던, 잠깐 산책을 다녀오겠다는 메모를 뒤늦게 발견하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자리에 앉아 기억을 더듬었다. 곧이어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몇 분 뒤, 어제 목격한 인형의 폭발 과정과 예상에서 어긋났던 움직임을 기록한 종이를 책상에 두고 문제점을 분석했다.
‘생명석을 대체할 만한 건 없어.’
정확히는 현재로서는 없다라는 것이지만, 결론적으론 지금은 생명석을 구해야 한다는 거다. 카리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같은 결론이 나자 탐스러운 금발을 쥐어뜯을 듯 헝클였다.
현재 남은 생명석은 그녀와 쥬다가 모았던 것까지 20여 개가 채 되지 않았다. 더구나 몇 개는 그 등급이 낮아 투명하지 않고 혼탁했으니 과히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과거 술사들이 모여 탑을 이뤘던 때에는 그 수가 많아 빠른 속도는 아니었더라도 꾸준히 모이고는 했는데 마체르트마저 없는 지금은 한계가 너무나도 명백했다. 그 한계는 마체르트의 죽음 직후에 바로 쥬다와 카리나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문제점이었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강구했던 가장 유력한 가능성이 처참히 실패로 끝난 이상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했다.
마법계에서는 새로운 주문을 만들면 그 주문에 특허를 낼 수가 있고, 인간에게 필요하거나 위대한 마법일 경우에는 새로운 종파를 만들 수 있는 종사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마법사라고 간판을 내밀고 다니는 그들 모두 기존에 존재하는 마법들을 사용하는 데 그친다. 그건 인형술사도 다르지 않아서 대부분의 많은 초중급 술사들은 존재하는 설계대로 인형을 만드는 것에 평생을 소비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인형 제작이기 때문에, 그 상위 단계의 설계 작업은 시도도 못하고 포기하는 술사들이 많았다. 때문에 새로운 설계도를 만들면 그 역시 탑에서의 장로 자격을 갖출 수 있었다.
쥬다는 제작과 설계 모두에 있어서 탁월한 술사다.
‘그 아이는 재능이 있어. 내 뒤를 이을 수 있을 게다. 무엇보다도 인형에 대한 집착이 그 아이를 성공으로 이끌어 줄 거야.’
쥬다가 처음으로 자신만의 작은 인형을 만들어 냈던 날, 그의 기쁨에 동화되어 순수하게 같이 좋아하던 카리나에게 마체르트는 말했다. 그는 성공할 것이라고.
쥬다의 실력에 관해서만은 마체르트마저 이견을 표하지 않았다. 예전 탑이 번성했을 때와 비교해도 찾아보기 힘든 실력자이니만큼 새롭게 사람들을 모아 단체를 형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부나방처럼 몰려들 것이다. 다만 아직도 그들에 대한 사도 심판자들의 관심이 식지 않았기에 제일 위험한 방법이기도 했다.
마체르트처럼 신분을 속인 채 귀족들과 연을 맺는 수도 있었다. 사방 천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동굴 속 생명석의 탐색보다 귀족들에게서 그것을 얻는 것이 더 효율적일 때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사정으로는 마체르트처럼 행동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다만 여전히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사회와 관계가 단절됐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삶을 살아왔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꿈꾸거나 두려움에 꽁꽁 숨어 버리는 성향을 보인다. 굳이 따지자면 카리나는 후자였다.
책으로 접한 인간 세상은 놀랄 정도로 화려했으나 또 한편 추악했다. 그들을 꿈꿀 만큼 결핍을 느끼고 있지도 않았다. 옆에 있는 쥬다만으로 충분했기에 다른 사람의 온기는 필요하지도 않았으며, 바라지도 않았다.
알지 못하는 막연한 것에 대한 불안함 역시 그녀를 망설이게 했다. 처음부터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무시해 왔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술사들의 염원을 그들의 대에서 이루기에 카리나와 쥬다의 힘은 너무 미약했다.
‘암시장에서 종종 경매로 붙여진다고 했어.’
카리나는 매일 마체르트의 말을 기억하고 되새겼다. 그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큰 도움으로 돌아왔던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곤란한 일이 있을 때면 그를 떠올렸다. 비록 그 가격이 부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 돈에 관련해서는 부족함을 느껴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도 급한 것은 생명석이었다. 그들이 정말로 사회의 귀족 세계에 편입할 게 아니라면 모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모아 두는 편이 좋았다.
술사임을 숨기고 치료사나 독술사 등 가진 바 능력을 이용해서 소셀런스의 눈을 피해 사회에 스며드는 건 어떨까.
카리나의 다재다능은 천재라고도 불렸던 마체르트의 감탄을 몇 번이고 이끌어 냈으니 명성을 얻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암중에서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조제한 극약과 생명석을 거래하는 것도 희망적인 선택지 중의 하나였다. 지하에서만 움직인다면 아무래도 감시자들의 눈을 피할 수 있을 테고, 더군다나 여기는 마법의 힘이 강력하지 않아 감시의 눈길도 약한 땅이다.
‘내가 재료들을 구하고, 쥬다는 계속 연구에 전념하게 하는 거야…….’
구체적인 계획은 잡히지 않았어도 카리나가 떠올리는 생각들은 하나같이 실현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의 신분은 진작 위조하여 꾸며 놓았기 때문에, 은근슬쩍 골목길로 들어간다면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이들은 적을 것이다. 뒷골목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이 생기고 없어지기 때문에.
그럭저럭 실행할 방법은 있다. 다만…….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프리뮬을 만드는 건 불가능해. 적어도 우리 대에선.’
그것에 쥬다가 만족할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고 해도 최고 등급의 생명석을 구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직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완전한 인간형의 인형, 프리뮬. 프리뮬을 만들기 위해서는 심장이 되어 줄 투명한 생명석이 필요하다. 대륙의 중심인 제국의 금고를 털러 가자는 말이 그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농담이었을 정도로 가장 바라기도 하고, 또한 구할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 재료.
욕망이 지나치게 큰 나머지 과거에는 몇 번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 정말로 제국의 높은 성벽을 넘었던 술사들의 정신 나간 시도가.
탑의 멸망은 그런 행위들이 모여서 나타난 필연적인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카리나는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법사들은 다 마법에 미친 괴짜 종자들이라고 하지만, 인형술사만큼 정신 나간 인간들이 있을까.
제 분신을 만드는 것에 온 생을 바치는 족속들이 인형술사다.
쥬다를 누구보다도 믿는 카리나지만 그 역시 그런 특징에서 벗어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그는 가족들까지 몰살당하지 않았던가. 인형에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그를 포기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더 괴로웠다. 가능하지 않는 일을 바라는 것만큼 덧없는 것도 없다.
‘차라리, 쥬다가 그냥 포기했으면…….’
불쑥 묻어 두었던 진심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만약 자신이 마법에 재능이 있어 정신 계통의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쥬다에게 썼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떤 쥬다라도 사랑하지만 저보다 인형에 미친 그보다는 온전히 저와 함께하는 쥬다를 원했다. 연구실에서 혼자 인형을 제작하는 그보다는 함께 숲길을 산책하는 그가 좋았다. 연구가 실패할 때마다 상심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그보다는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평온해하는 그가 좋았다.
쥬다의 꿈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움직이기는 하나 그게 그녀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쥬다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쥬다는 새벽에 나간 그대로 저녁이 올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카리나는 그날 어떤 것도 입에 대지 못하고 침실에서 하염없이 그를 기다렸다. 모든 감각이 예리해졌다가 둔감해졌다가, 풍랑이 이는 바다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억지로 그것을 누르는 대신 수를 세었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를 즈음 됐을 때 수는 오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삐걱, 쿵.
처음에는 간절히 바란 나머지 헛것을 들었나 싶었으나 반가운 발자국 소리가 이어졌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카리나는 움직이지 않고 조금 더 기다리다가 소리 내지 않고 일어섰다. 이 층으로 올라가 어젯밤 쥬다가 잠들었던 방문을 열었다. 가구라고는 침대와 옷장밖에 없는 방은 어두웠다. 침대로 올라가 어슴푸레하기 윤곽을 드러내는 등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두 팔로 배를 감고 날개 뼈에 이마를 댄 채로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씁쓰레한 나무 향이 폐부로 흘러 들어왔다. 싸늘하게 식은 몸에 닿은 그의 온기에 눈물이 찔끔 맺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