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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내가 듣는다 2화
제 1장. 옆집 남자 (2)


‘왜 깬 거지.’
다소 예민하기는 했지만 한번 자면 꿈도 잘 꾸지 않고 푹 자는 편이었다. 잠시 눈을 깜박인 세류는 피곤해서 깬 거라고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
“아앙……!”
그의 바로 옆의 벽에서 신음이 들려오지 않았다면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잠에 막 빠져들려던 세류의 눈이 다시 마법처럼 떠졌다.
“뭐야.”
세류는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잠을 자지 못한 스트레스가 화로 승화하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오늘도야? 세류의 이마에 크게 사거리 마크가 생겼다.
세류 크리스토퍼는 다른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교류를 피하는 편이었지만, 갈등을 빚는 데는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세류는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어른이 되면서 다혈질인 성격을 꽤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벽에서 다시 신음 소리가 났다. 잘게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까보다 조금 더 격렬해진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아앙, 아! 아, 나, 나 죽겠, 아……!”
아주 좋아 죽겠다는 목소리였다. 단번에 머리에 열이 뻗친 세류는 망설이지 않고 꼭 쥐었던 주먹을 들어 벽을 쾅! 쳤다.
그래, 새로운 이웃이여. 우리 한번 갈등을 빚어 볼까. 세류가 입꼬리를 씰룩이며 기분이 더러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뭐야, 뭐야.’ 하는 조그만 속삭임과 함께 신음이 잠시 멎었다. 무언가를 깨달은 세류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어제랑…… 목소리가 다르다.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세류는 허리에 걸쳐진 이불을 쥐고 마구 뒤집으며 성질을 냈다. 옆집 남자는 오늘, 지치지도 않고 다른 놈을 끌어들인 모양이었다.
오늘 아침에 ‘이사한 기념으로 애인을 끌어들인 것이 분명해!’라고 억지로 좋게 해석해 주던 자신이 무안할 지경이었다. 섹스킹이 아니라, 게이킹이었냐. 이웃이 된 기념으로 이제부터 펼쳐질 나의 하렘 천국을 들어 보라 이런 거야?!
다행히 그날은 더 이상 큰 신음 소리가 나지 않았다. 작게 앙앙거리는 소리를 무시하려고 세류는 귀를 틀어막고 잠을 청했다. 내일 바로 성능 좋은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주문할 테다. 그는 그렇게 굳게 결심했다.
세류는 퀭한 얼굴로 토스트를 우물거렸다. 어제 그래도 조금은 잔 거 같은데 스트레스 때문인지 피로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다. 지금은 아침 7시. 문을 타고 복도 소리가 다 들려오는 덕분에 그는 어제 신음의 주인공이 아양 떠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디노~ 어제 정말 좋았어! 조만간 또 연락할게!”
으으. 으으으으.
목이 막히는 거 같아 세류는 우유를 꿀꺽꿀꺽 마셨다. 지금 당장 옆집에 따지러 가고 싶었다. 아무리 개인 프라이버시라고 해도 정도가 있지! 그 정도로 큰 신음 소리면 조금 과장해서 자기뿐만 아니라 이 맨션에 사는 모두가 들었을 것이다.
사실 세류가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세류는, 간단히 말하자면 목소리 패치였다. 외모보다는 목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가 어제 상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작업할 때 정신 집중이 되지 않아 카오스 상태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세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다혈질인 세류라도 나름의 룰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삼세번의 법칙이었다.
‘두 번까지는 괜찮아. 하지만, 오늘도 그런다면 가만있지 않을 테다.’
따로 이사하지 않는 이상 그는 데스크가 있는 이 집에서 작업해야 했다. 물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살 생각이기는 하지만, 공동체 생활이니까 옆집도 조금은 이웃을 배려해 줘야 하는 거잖아? 세류는 오늘도 그런다면 내일 해 뜨자마자 바로 따지러 가리라 굳게 다짐했다.
밥을 해치운 세류는 어제 만들어 놓은 계획표를 바라보았다. 곱게 프린팅해서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둔 계획표의 내용은 자신이 생각해도 완벽했다.
‘화요일만 버릴 수 있는 종이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 일을 시작해야지. 밤에 또 방해를 받으면 참을 수 없을 거니까. 낮에 기본적인 건 다 해결해 놓아야겠어.’
습관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인 세류는 베란다에 모아 놓았던 종이 쓰레기 뭉치를 손에 들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복도 벽에 기대어 멍한 표정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는 옆집 남자가 보였다. 방금 씻었는지 살짝 물기가 어린 검은색 머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 빛을 냈다. 그는 평범한 청색 티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티셔츠를 걸쳤음에도 운동으로 다져진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어.”
세류의 목소리에 남자가 반응했다. 그는 세류를 보자마자 어제 처음 만났을 때처럼 꾸벅 고개를 숙였다. 큰 덩치와 상반되는 아주 얌전한 얼굴을 하고서.
하지만 세류는 그가 전혀 얌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따위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밤마다 사람을 바꿔서 집에 데려오는 바람둥이인 것이다. 세류는 할 말이 많다는 듯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네, 좋은 아침이네요.”
그 말에 남자가 살짝 소리를 내어 웃었다. 뭐가 웃긴 거야. 삼세번은 개뿔이, 지금 따져 줄까 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목소리 패치인 세류는 그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뭔가 울림이 깊은 목소리였는데.
남자가 나지막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게요.”
세류는 따지려 했던 마음이 푸스스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제기랄. 옆집의 바람둥이 남자는 목소리 하나는 더럽게 좋았다.
세류는 뭐라 더 말하지도 못하고 도망치듯이 쿵쾅대며 복도를 벗어났다. 머릿속이 잔뜩 꼬인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아아아아악!!!!!”
세류가 쓰레기장에 종이 쓰레기 묶음을 내던지며 포효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뭔가 상성이 안 좋다. 역시 바람둥이는 뭔가 다르다. 얘기를 더 했다면 그 더럽게 좋은 목소리와 멍하면서도 어딘가 촉촉한 눈빛에 끌려서 그쪽의 페이스에 말려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세류는 짜증과 흥분으로 뛰어 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 자리에서 콩콩 뛰었다. 그 뒤로도 한동안 주먹을 쥐고 쓰레기장에 가만히 서 있던 세류는 빠른 걸음으로 집에 들어와 자동문을 손으로 쾅 닫았다. 다행히 옆집 남자는 집에 들어갔는지 복도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잰걸음으로 방에 들어가자마자 노트북을 열었다. 신들린 듯한 타자 소리가 한동안 이어진 뒤에, 세류는 자신이 원하던 상품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당일 배송.”
세류는 망설임 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결제 확인 창이 스륵 나타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의자에 늘어지듯이 기댔다. 계속 혼자 있는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런 사소한 말썽에도 마음이 계속 흔들리는 모양이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김영진이랑 애들을 불러서 사교적인 모임을 많이 가져야겠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의 주문을 완료한 뒤로 다시 기분이 좋아진 세류는 예정대로 데스크에 앉아 A급 술사 제라드가 표시해 준 좌표 위에 마킹 작업을 했다.
어제의 자극이 생각나 정신이 움찔하며 불안한 파동을 보일 때면 세류는 이렇게 자신에게 되뇌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에게는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 있어.’
그 주문은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세류는 저녁 9시가 되기 전에 계획했던 작업을 다 끝낼 수 있었다. 기동을 종료하고 천천히 눈을 뜬 그는 만족스러운 충족감을 느꼈다. 오늘 할 일도 제대로 했고, 현관 밖으로 나가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도 와 있을 것이다.
배송 메모에 ‘작업 중이니 현관 앞에다 놓아 주세요’라고 써 놓았으니 저번처럼 현관문에 딱 붙여서 상자를 놓아두었을 것이 뻔했다.
때마침 복도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세류는 즐거운 마음으로 현관을 열어 젖혔다.
“오셨군요!”
기다렸던 상품을 받기 위해 간만에 만면에 미소를 지은 세류의 얼굴은, 주황색 머리 젊은 남자의 얼떨떨한 얼굴을 보자마자 평소처럼 굳어졌다. 주황색 머리 남자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디노……의 집 아닌가요?”
그 목소리를 듣고 세류는 반쯤 질려 버렸다. 우와, 또 다른 목소리의 남자. 어이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다. 아직 이 새로운 남자에게 피해를 받은 것도 아닌데 그에게 짜증을 낼 수는 없었다. 세류는 표정을 평안하게 유지하려 애쓰며 대답했다.
“아마 그거 옆집입니다.”
“네?”
“요 왼쪽 집이라고요.”
세류가 검지를 들어 왼쪽을 가리켰다.
“아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주황색 머리 남자가 세류에게 윙크를 날리고 옆집으로 갔다. 그가 문을 쾅쾅 두드리며 ‘디노 군! 나 왔어!’라고 말하자 바로 옆집 문이 열렸다. 세류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현관문 앞을 망연자실한 눈으로 쳐다본 뒤에 문을 닫았다.
‘헤드폰이 없잖아.’
세류는 절박한 마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노트북을 열고 주문 상품 페이지를 확인한 그는 얼굴을 두 손에 묻었다. 당일 배송이라며. 당일 배송이라며!!! 기업에 속은 억울한 소비자의 마음으로 애꿎은 책상을 쾅쾅 두드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당일 배송’이라고 적혀 있던 주문 페이지에는, 내일 날짜가 적혀 있었다.



세류는 두 손으로 귀를 꼭 막고 누워 있었다. 이틀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오늘이야말로 피로를 해소해야 했다. 그래야 내일 마킹 작업을 한 기초 시공간 맵 위에 릴리트를 짜 맞춰 작업을 진행할 가상공간 레이어를 만들 수 있다.
옆집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세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래. 웃음소리는 좋아. 아주 좋잖아. 평화롭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웃음소리.’
단지 신음 소리가 문제다. 모텔도 아니고, 누구도 자신의 작업실 겸 침실에서 다른 사람의 성생활을 생중계 받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야.’
세류는 귀를 더욱 세게 막고 눈을 감았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당황스럽고 부끄러우며,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거다. 또한 거짓말쟁이 헤드폰 회사가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제때 배송해 주지 않은 바람에 오늘 밤에도 그 소리를 들어야 할 판이었다.
작업실이 아닌 거실의 소파에서 자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세류는 예민한 편이라서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잤다.
눈을 꼭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하려 애썼다. 하지만 피로가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졸음은 쉽게 오지 않았다. 이제 10시였다. 주로 11시부터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빨리 자야 하는데.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잠기운이 슬슬 물러가기 시작했다. 전혀 잠이 올 것 같은 기분이 아니었다. 세류가 억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망했어.”
세류는 이불을 몸에 말고 좌우로 데굴데굴 굴렀다. 잠이 안 온다. 저 옆집 남자가 이사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일이 끝나면 바로 침대에 다이빙해서 꿀잠을 잤었는데, 이제는 잠을 청할 때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숨을 쉬었는지, 눈동자와 혀의 위치를 어디에 두었는지도 헷갈렸다.
허황한 잡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시계가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안 돼.’
빌어먹을 신음 소리가 들려올 시간이 되었다. 아직은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벌써 긴장해 버린 세류는 천장을 보며 눈을 신경질적으로 깜박였다.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예정된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되자 그는 다른 식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래. 피할 수 없다면 보는 시각을 바꿔 보는 거다.
애초에 자신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는 걸까? 사람의 성생활은 밤이 되면 집집마다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행위다. 본디 신음이란 놈은 기분이 좋으면 자연히 입을 타고 나가게 되는 법이다.
그래. 본질적으로 신음이 웃음소리와 다른 점이 뭐지? 둘 다 사람이 외부 환경에 자극을 받아 나름대로 음성으로 표현하는 건데.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자다니. 신이 자기가 하는 양을 보았다면 ‘아이고. 이 예민한 녀석 좀 보게.’라고 말하며 웃을 것이 분명했다.
세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건 자연적인 소리야. 새벽에 새가 지저귀는 것과 별다를 게 없어. 옆집 남자가 초대한 사람들은 11시에 맞춰서 우는 새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옆집에서 난리를 치는 것도 별일이 아닌 것만 같았다.
깨달음을 얻자 불안에 요동치던 마음이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어차피 이틀 들었던 거 하루 더 못 듣겠어? 내일은 어차피 그를 구원해 줄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 예쁘게 뽁뽁이에 싸여 집에 도착할 것이다.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세류는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머지않아 옆집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는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귀를 콕콕 찌르는 소리에 간헐적으로 세류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는 아까 얻은 깨달음으로 자신을 타일렀다.
어디서 새가 우는구나.
그래. 새가 운다. 새가…… 새가. 주황색 새가.
“흑, 아, 아……! 핫! 아아!”
아까 현관에서 마주쳤던 주황색 머리의 남자는 활기차 보이는 외양과 다르게 침대에서는 녹아내리는 타입인 모양이었다. 아니야. 생각해서는 안 돼. 세류는 고개를 힘차게 젓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썼다.
그런데 오늘 들리는 소리는 어제까지 들었던 소리와는 조금 달랐다. 어제까지는 초대받은 손님만 큰 소리로 신음했었는데, 오늘은 옆집 남자의 목소리도 들렸던 것이다.
“크……흣……!”
낮은 목소리가 벽을 타고 내려와 세류의 귀를 간지럽혔다. 좋은 목소리에 저절로 귀가 쫑긋 섰다. 방음이 잘 안 되어서 그런지 그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세류는 이불로 달아오른 얼굴을 가렸다. 그래,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정말 목소리 하나만큼은 세류의 취향이었다. 그리고 빌어먹을 목소리 패치는 이런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듣고 싶지 않다며 귀를 막았었는데 팔에 힘이 빠질 때쯤에는 침을 삼키는 것도 잊고 옆집 남자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황색 머리 남자의 신음 따위는 뇌 내 필터로 자연스럽게 걸러내졌다.
디노라는 이름일 것이 분명한 옆집 남자는 참는 목소리마저 섹시했다. 숨을 참으며 움직이다가, 가끔 터져 나오는 앓는 소리는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치겠네.’
세류는 머리를 감싸 안았다. 처음에는 새 울음소리 같은 자연적인 소리라고 생각하고 흘려들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집중해서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 버렸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새소리를 대하는 올바른 인간의 태도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신음 소리를 새 울음소리와 동급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는 눈을 찡그리며 번민에 빠졌다.
‘들으면 안 되는 거겠지, 이거. 근데 멋대로 들려주는데 어떡해? 그래, 내가 변태인 게 아니야. 들려주고 있는 저쪽이 변태인 거야.’
세류는 정자세로 배꼽에 두 손을 곱게 모으고 눈을 감았다. 원래부터 저쪽이 변태였다. 자신은 변태가 아니라 목소리에 낚인 선량한 피해자일 뿐이다. 어제도, 그제도 사람을 바꿔서 집에 데려오질 않나. 어제 벽을 친 걸 들었으면 좀 자제라는 걸 할 줄 알아야지.
세류는 눈썹을 모으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됐어. 이제 잘 거야. 더는 저쪽이 내 생활을 방해하게 놔두지 않을 테다.



시발, 씨발!!!!
옆집이 조용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류는 속으로 욕을 지껄이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이불이 다리에 걸려 걸리적거리자 세류는 이불을 아예 뻥 차 버렸다. 이불이 공중을 유영하다가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세류가 속으로 고함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아아악!!!!
그대로 잠들었어야 했는데. 역시 잠들지 못했다. 차라리 귀를 막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속으로 잘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얌전히 옆집 남자가 내는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세상에. 옆집 남자가 파정하면서 낸 목소리는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느 목소리보다도 섹시했다.
‘며칠 사이에 내가 변태가 다 됐나 봐.’
침대에서 일어난 세류는 작업실을 서성이며 혼란에 빠졌다. 원래부터 이렇게 변태였나? 친구들에 비하면 목소리 패치가 조금 심할 뿐이지 금욕적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까 완전 상변태가 따로 없었다.
“씨발…….”
세류는 아래를 흘깃 쳐다보고 물기 어린 목소리로 욕을 했다. 원래 하반신과 머리는 따로 노는 법이라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흥분해 버렸는데, 이대로 화장실에 가서 빼 버릴 수도 없었다. 만약 그따위 짓을 한다면 그냥 상변태도 아니고 최악의 진성 변태나 다름없다.
그는 어기적어기적 어색한 걸음으로 샤워실로 향했다. 옷을 대충 훌렁 벗어 던진 뒤 샤워 부스에서 차가운 물을 있는 힘껏 틀었다.
“아아악! 차거어!!!”
그리고 알몸에 닿는 차가운 느낌에 비명을 질렀다. 가슴을 양팔로 감싸며 세류는 눈을 꼭 감았다. 이것은 상변태에게 내리는 벌이리라. 그는 몸을 움찔움찔 떨면서도 그 차가운 물을 다 맞았다.
냉수 샤워를 끝내고, 몸에 흰 바스타월을 걸친 채 작업실로 돌아왔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았는데 그의 얼굴은 거무죽죽하게 변해 있었다.
더 자책할 힘도 없었다. 세류는 머리만 대충 말린 뒤에 바스타월을 벗지도 않고 침대에 엎어졌다. 그의 뺨이 베개에 눌렸다. 그제야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던 잠이 슬며시 찾아왔다. 세류는 엎드린 채로 생각했다.
어쨌든 자신이 변태 같은 짓을 해 버린 바람에, 내일 일어나자마자 따지러 가려던 계획은 자연스럽게 파투가 나 버렸다. 그 얼굴을 제정신으로 어떻게 보냐고. 답답한 마음에 세류는 배게 옆을 팡팡 두드리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