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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1. 황태자의 귀환





자정이 가까운 시간.

“엄마, 우리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어요?”

모처럼 하경을 제외한 온 가족이 둘러앉은 가운데, 아버지의 제사상을 앞에 두고 문득 하준이 물었다.

갓 돌이 되기도 전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추억은커녕 남겨진 사진 한 장 없어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그에게 그것은 사뭇 애틋한 질문이었다.

동시에,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과부의 길로 들어선 어머니에게 묻기에는 어쩐지 좀 미안스럽고 또 어려운 질문이기도 했다. 그간 한, 그 엄청났던 고생도 고생이거니와 혼자 자식들을 키우면서 얼마나 원망이 많았을 것이며 또 그리웠을 것인가.

그런 사정들을 헤아리느라 고작 그 질문 하나를 꺼내는 것이 숨이 차도록 어려운 그였다.

“크흠, 어떤 분이셨을까?”

이제 와 굳이 알아야 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날이 날이니만큼, 그리고 나이도 나이니만큼, 이제라도 기억에 없는 아버지일망정 이야기를 통해서나마 약간의 추억거리 정도는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그의 바람이었다.

“궁금하네?”

“뭐, 그냥 조금.”

하준의 대답에 칠순을 바라보는 그들의 어머니, 윤종말 여사가 조금 아련한 시선으로 둘러앉은 아들들을 주욱 돌아본다. 그러곤 묵묵히 앉아 있는 하중과 하서를 향해 물었다.

“너그들도 알고 잡네?”

“아닙니다, 오마니.”

“전혀요.”

장남과 차남이라는 자들이 냉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울컥한 하준이 잠시 눈에 힘을 빡 주고 노려보았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들들의 의견을 차분히 접수한 윤 여사가 문득 하준에게 말했다.

“그래, 굳이 알고 잡다면 말을 해 주야디. 하준아…….”

“예, 엄마.”

“너그 아바이는…….”

꿀꺽.

“개후레자식이었드랬어.”

“푸웁! 쿨룩.”

“원래부터 승질이 개떡 같았드랬지. 잘난 낯짝 값을 하느라 바람기도 많아서리 너그들을 낳고서도 동리 에미나이들을 숱하게 건드렸디 않니? 기런데…… 더 가관이 뭐였는지 아네?”

갑자기 그만 듣고 싶어졌다. 그러나 또 그러거나 말거나 윤여사는 표정 하나 변하는 법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사내쳇것(하잘것없는 사내, 놈)이 주먹질도 잘핸. 이거이는, 술만 들어갔다 하믄 주먹질이 예사였디. 덕분에 너그 오마니 열댓 번은 죽었다가 깨어났어야. 너그 형들도 어려서 제법 맞아 봤드랬어. 너그 아바이 덕분에 둘째가 하마터면 기저귀 차고 골로 갈 뻔했디.”

“딸꾹.”

“하준아.”

“예, 예?”

“너어, 돌아가신 아바디 꼭 빼닮았다고 오마니가 말했든가?”

“아, 아, 아니…….”

언젠가 들어 본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하준은 갑자기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런 그를 향해 윤 여사가 스산한 눈으로 마지막 비수를 꽂았다.

“혹시나 싶어서 하는 이야기인데, 너어…… 공연히 뇨자들한테 주먹질하구 댕기지 말라. 술 처먹구서리 그 짓거리하고 댕기는 거 눈에 뜨였다가는, 그 길로 오마니 손에 절단 나는 기야. 알안?”

“……네.”

좌절에 빠진 하준이 울 듯한 얼굴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꼴을 앞에 두고 윤 여사가 문득 제사상을 돌아보더니 눈을 가늘게 내려뜨면서 말했다.

“개다리 같은 간나 새끼. 내래, 저 자식 놈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젯밥 차려 주는디 알라. 하준이 놈만 없었어도 젯밥이고 뭐고 족보에, 성씨까지도 갈아치웠을 기야. 저승에서도 보지 말자우.”

흥! 날렵한 콧김으로 촛불을 불어 끈 다음 윤 여사는 용이 꿈틀거리는 치맛자락을 탁탁 털면서 냉큼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경이는 들어완?”

돌아서면서 묻는 말에 큰아들 하중이 냉큼 대답했다.

“예, 오마니. 아까 전에 들어와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요.”

“기래? 딱한 것. 휴우, 아바이 얼굴도 모르고 자란 불쌍한 것. 훌쩍. 다 내 죄인 기야.”

“아니, 나도 아바이 얼굴 모르고 자랐는데…….”

“어느 주둥이로 그런 개소리를 하네? 모르고 자란 게 다행인 줄 알라. 썩을 놈. 오늘은 우리 애기랑 같이 잘란다. 상 고만 치우라. 그리고 너들도 퍼뜩 꺼지라. 꼴 보기 싫다.”

휑하니 사라지는 윤 여사의 치맛자락 끝으로 눈물 젖은 하준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를 동정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좋겠다, 은하준. 아바지 꼭 빼닮아서.”

“철딱서니 없는 새끼.”

같은 아버지를 둔 두 형제들까지도.

“아니이, 나는…… 하경이 아버지는 그렇게 신사였다고 허구한 날 입에 침이 마르면서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없는 게 쓸쓸해서 그랬지.”

“쓸쓸? 쓸쓸이 지난겨울에 다 얼어 죽었다던? 이 새끼야, 기저귀 찬 자식 죽으라고 내던진 것도 그럼 쓸쓸해서 그런 거 같으냐?”

“말해 뭣해요. 근데, 형님은 아직도 가끔씩 악몽을 꿔요?”

“응. 힘든 날엔 꼭 꿈에 보이더라. 추운 겨울날, 맨발로 쫓겨나 개처럼 두드려 맞는 꿈이 어찌나 춥고 무서운지…….”

“어머니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저 새끼 사춘기 때 미친 짓 하고 다닌 거 보면 진짜 꼭 닮긴 한 것 같아. 괜히 깡패 짓을 하고 다녔겠냐고.”

한 맺힌 형제들의 성토에 하준의 어깨가 점점 더 아래로 기울어졌다. 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하준이 끝 모를 좌절의 늪 바닥을 향해 똑바로 곤두박질치고 있을 때 윤 여사는 죄책감 하나 없는 얼굴로 누워 아기처럼 잠든 하경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 있었다.

토닥토닥…….

“반듯하고 선했었디. 신사 중의 신사였드랬어. 부드럽고 친절하고 박식하고 또오…….”

눈부신 사람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떠올릴 때마다 눈이 부시고 가슴이 부서져 내릴 만큼 아름다운 사람. 그런 사람을 사랑했다. 사랑했었다. 사랑한다.

저도 모르게 젖어드는 눈가를 손등으로 훔쳐 내며 윤 여사는 잠시 멈추었던 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마니는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어야. 그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또 너를 낳은 거 절대로 후회해 본 적이 없어.”

원망도 후회도 해 본 적은 없었다.

죄스러움과 그리움에 사무쳐 목이 터져라 운 밤은 있어도 사랑했음을, 사랑하고 있음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그는, 그 사랑은 그녀가 여자였음을 증명해 주는 단 하나의 추억이었기에.

“사람 팔자 꼬이는 거이 한순간이라드니 오마니가 딱 그랬디. 하준이 아바디, 그 개호로 간나 새끼만 아니었어두…….”

가만히 옛일을 떠올리고 보니 갑자기 속에서 울화가 치민다.

가슴속에서 불끈 치솟는 억울함, 분노. 벌떡! 윤 여사는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속치마 차림으로 냉큼 뛰쳐나가 막 제사를 치르고 나온 방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들 셋이 모여앉아 제사상에 올렸던 정종 병을 사이에 두고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어, 어머니? 왜요?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이, 이, 이…… 처죽일 놈의 간나 새끼!”

다다다다.

아직 지방도 치워지지 않은 제사상을 노려보던 그녀가 순간 잰 걸음으로 후다닥 달려왔다. 그리곤 두 손으로 상을 잡고 확 뒤집어엎어 버린다. 와장창창!

“오, 오마니!”

“방금 처먹은 젯밥 도로 다 토해 놓고 가라. 이 썰어죽일 놈의 간나 새끼래, 꼬인 내 팔자 도로 풀어내란 말이디! 이 새끼, 이 새끼, 이 간나 새끼!”

자신들의 반 토막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성난 암호랑이처럼 지방을 걷어차며 길길이 날뛰는 그녀를 보다 하중이 조용히 하준에게 속삭였다.

“너, 빨리 도망가라, 하준아. 오마니 또 눈 돌아가셨다.”

“또, 또?”

“이 새끼야, 빨리 튀어. 안 그럼 너 오늘 진짜 죽어.”

그 말에 혼비백산한 하준이 냉큼 돌아섰다. 그러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준이 두 손에 신발을 든 채 맨발로 평창동 집을 뛰쳐나갈 때까지도 윤 여사의 발광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달이 유독 밝은 밤이었다.



탁!

“너들 말이다…….”

간밤에 도망갔던 하준까지 슬그머니 끼어든 아침 밥상머리에서 윤 여사가 문득 수저를 도로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좋은 자리 좀 하나 알아보라우.”

“예? 자리라니요?”

“하경이, 이제 시집을 보내야 하지 않갔네?”

“예에? 아니, 엄마도 참. 걔 나이가 몇인데 벌써 시집을 보낸다고 그러세요?”

“벌써 스물일곱이디. 몇 달 더 지나면 스물여덟이고.”

“쿨룩. 버, 벌써 그렇게 됐었나?”

은씨 삼형제가 마치 뒤통수 맞은 쌍둥이들처럼 똑같이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마니 닮아 사이즈 심플하고 동안에 어리광쟁이라 아직 한참은 어린애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이가 그렇게 됐단다.

하긴, 얼마 전에 결혼한 동갑내기 배꼽친구 희수는 벌써 애까지 가졌다지. 아니, 근데 그 모습을 보면서도 ‘하경이도 시집보내야지.’라는 생각을 왜 못한 것일까, 다들?

“뭐 하러 벌써 보낸다고 그러세요? 아직 어린데. 그냥 좀 더 데리고 계세요, 오마니. 딸이 둘 있는 것도 아니고 요샌 나이 서른 넘어 보낸다는 집들도 많잖아요.”

큰아들인 하중이 나서서 아무래도 안 내킨다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어 보았다. 그러면서 둘째인 하서에게 슬쩍 눈치를 준다.

“제 생각도 그래요, 어머니. 걔가 희수에 비해서는 아직 철딱서니가 없잖아요. 좀 더 데리고 계시면서 살림도 가르치고 그러시는 게 좋아요.”

“흥! 모르는 소리 말라. 그래도 속은 꽉 찬 기야. 그리구 살림이야 두고두고 가르치면 되는 거이디.”

“아니이, 그러니까 왜 갑자기 시집을 보내고 싶어지신 거예요, 엄마? 하경이는 평생 끼고 사실 줄 알았는데……. 그러려고 우리 죄다 내쫓은 거 아니었어요?”

“기랬지.”

윤 여사는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다. 셋이나 되는 아들들보다 달랑 하나뿐인 딸내미를 더 귀애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그 딸내미가 아들들에 비해 매우 어리기까지 하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

그리하여 몇 해 전, 울며불며 매달리는 아들놈들을 우르르 내쫓으면서도 윤 여사는 죄책감 하나 없었다. 이미 처자식 다 딸린 놈들이니 따로 걱정할 이유도 없었던 데다 하준의 말처럼 그녀는 그 하나뿐인 딸내미를 평생 끼고 살 작정이었으니까 말이다.

“기런데 어젯밤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까니,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되는 기야. 내래, 이제 살면 올마나 더 살갔네? 10년? 20년? 나 가고 나면은 저 불쌍한 거이 혼자 남갔구나 싶은 것이, 누가 뒤를 살펴 주나 걱정도 되고…….”

“아, 혼자는 무슨! 우리가 있잖아요. 오라비가 셋인데 뭐가 걱정이야? 걱정 마세요, 엄마. 내가 우리 하경이 잘 돌볼게.”

“닥치라우. 너, 이 아 새끼래 너를 믿을 수가 없어서 걱정인 기야. 너들이 왜 쫓겨났는지 벌써 잊은 거이네?”

칼 같은 윤 여사의 말에 세 아들들이 서로를 돌아보다 일제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순간의 방심이 하마터면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뻔했었기에 그들은 지금도 늙은 어머니 앞에 죄스러웠다.

무엇보다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하경이의 상처를 목격할 때마다 뒷목이 서늘해지고 가슴은 참을 수 없이 먹먹해진다. 하중은 침중한 얼굴로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준아, 밥 먹고 나서 따로 조용히 좀 보자.”

“나도 같이 봐야겠다.”

“나, 난 왜? 아, 왜 또오?”

형들의 스산한 시선에 하준이 펄쩍 뛰며 발작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그의 발을 잽싸게 꾹 밟아 누른 하서가 성질머리만큼이나 싸늘하게 툭 내뱉었다.

“시끄러워, 이 새끼야. 넌 맞아도 싸.”

“아, 진짜 너무들 하네. 내 죄는 내가 잘 알고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꼭 아침부터 이래야겠냐? 그리고 지금은 하경이 시집보내는 문제가 먼저잖아?”

“흥, 말꼬리를 돌리겠다 이거냐?”

“그,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무튼, 난 반대라고.”

하준이 수저를 탁 내려놓으며 선언했다.

“요즘 새끼들이 얼마나 영악해졌는데 하경이를 선 시장에 내보낸다는 거야? 우리 집안 이야기를 듣고 그런 자리에 나오는 놈들이 노리는 거야 어차피 빤한 거지. 멀쩡한 애 도매금에 팔아치울 일 있어? 우리 하경이가 뭐가 모자라서?”

“모자란 거야 없지.”

“당연히 없지.”

두 형제가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힘을 얻은 하준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윤 여사에게 얼굴까지 디밀고 말했다.

“엄마, 마음도 없는 애 괜히 시집보낸다고 날치지 말고 지금은 그냥 내버려두세요. 걔 성질 몰라서 그래요? 그냥 내버려둬도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제 짝을 찾아오겠지.”

“말 다했네?”

“응? 으, 으응.”

두 눈을 가늘게 내려뜨며 묻는 말에 하준은 저도 모르게 움찔 어깨를 떨었다. 어젯밤 길길이 날뛰던 그녀의 모습이 빠르게 뇌리를 스쳐 가고 있었다. 설마, 아직도 화가 덜 풀렸나?

딱!

“악!”

아니나 다를까.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윤 여사가 내려놓았던 숟가락을 도로 들더니 가차 없이 휘둘렀다. 이마를 얻어맞은 하준이 머리를 감싸 쥐고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아야야. 아, 왜 때려, 또오?”

“너 이 아 새끼래, 고거이 오라바니라는 놈이 할 소리네? 모이가 어드레? 어련히 알아서 찾아 오갔지? 올마나 관심이 없으면 그딴 개소리가 나오네? 어이?”

“오마니! 진정하세요, 진정하시라요.”

슬슬 일어설 듯한 기세를 보고 하중이 잽싸게 그녀를 끌어안고 눌러 앉혔다. 자상한 큰아들답게 손을 붙잡고 다정하게 물었다.

“안 그래도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내시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어요. 오마니, 요즘 하경이한테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 휴우, 아모 일도 없디.”

“……?”

“아모 일이 없으니 문제 아니갔네? 그 에미나이가 요즘 올마나 허한 꼴로 돌아댕기는지……. 달랑 하나 있는 친구 시집보내 놓고서리 쓸쓸한지 이리저리 헤매다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돌아오는데, 내래 가슴이 철렁해서 ‘어이구야, 그냥 두면 안 되갔구나.’ 생각한 기야.”

“하경이가 그랬어요?”